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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019-10-10 오후 1:46:14 경충일보 mail kcn5894@hanmail.net


    김병연/시인.수필가

    여행은 오랫동안 인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수렵채취를 위한 방랑생활, 노예와 토지 확보를 위한 정벌, 자원과 돈을 찾아 나선 항해, 식민지배와 자본의 확장을 위해 인류는 세계를 떠돌아다녔다. 여행은 언제나 인류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일반적으로 여행을 가장 많이 하고 익숙한 건 상인이었다. 상인들은 그들만의 생존방식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어 산과 들과 바다와 강을 넘었다. 또 다른 여행의 주된 형식은 종교적 순례였다. 종교인들은 그들의 성지를 찾아 일부러 고행을 자처하며 기나긴 길을 걸었다. 이처럼 여행은 주로 생존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순례 같은 종교적 이유나 외교 같은 정치적 이유 정도였다. 

    여행이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그 속에서 세계와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깨달음과 감동의 형식으로 변화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것은 유럽에서 유행되었던 그랜드투어라고 불리는 문명여행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까지 유행한 그랜드투어는 주로 상류층과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는데, 무엇보다 수준 높은 교양과 학습에 그 의미를 두고 있다. 이때 여행자들은 오랜 여행을 통해 문명과 역사를 구석구석 배우고 비싼 예술품을 구매하며 부(富)를 과시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었다. 

    현대에도 대표적인 여행형식이 있다. 보편화 된 여행형식으로는 관광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관광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겠지만, 적어도 많이 소비되는 관광의 형태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다른 나라의 명소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명소를 이동하며 세상을 구경하는 것이다. 패키지여행이든, 배낭여행이든 이러한 형식은 동일하며 주로 볼거리 위주로 빠르게 구경한 다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현대 여행에서 바라는 것은 어떤 교양과 배움이다. 이는 새롭고 이색적인 풍경을 보고 감동하고 세상이 넓다는 것을 다양한 세계에서 배우는 것이다. 

    한편 현대 여행이 계승하고 있는 또 다른 전통이 있다. 여행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몸을 통해 먼 곳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이 외부세계라는 공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근래에는 여행이 오히려 보다 세밀한 자기 자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다. 따라서 여행이 내면의 여행, 자아 발견의 여행, 자기 자신에게로 떠나는 여행으로 한 차원 높게 변모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여행을 통해서 얻은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 새로운 결심, 달라진 희망 등을 이야기한다. 이런 여행을 내세워 대중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은 사람이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이다. 그는 여행을 근본적으로 자아 찾기, 자신의 소명을 깨닫기, 자기 자신만의 신화를 발견하기라는 차원으로 승화시켜 여러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 

    이러한 여행은 자기 자신에 이르는 여행으로 변모되었다. 그리하여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저 드높은 산으로, 깊은 숲으로, 넓은 바다로, 유유히 흐르는 강으로 사람들을 부른다. 이런 여행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주로 40대가 주를 이룬다. 그것은 지금까지 가정과 직장만 알고 세월에 흐름을 타고 다니다가 40대에 이르러 자기 자신을 발견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작품 지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바야흐로 여행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우리는 여행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설렌다. 왜 그럴까. 여행을 찌든 일상에서의 탈출, 스트레스의 해소, 재충전의 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여행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한데 조금만 더 욕심을 부려 생각하면 여행이 우리에게 얼마나 유익한 깨달음을 주는지를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 거의 비슷한 일을 반복적으로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고정된 틀 안에 갇혀 새장 속의 새의 신세로 전락한다. 오랫동안 새장 속에 갇힌 새는 자신이 과거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녔던 기억을 잊는다. 새장 속에 갇힌 새를 갑자기 풀어 놓은들 이미 나는 법을 잊어버린 새에게 창공은 의미가 없다.

    여행은 우리에게 날갯짓을 잊지 않도록 하는 필수 교육과정이다. 우리에게 여행이 없으면 아주 답답하고 고리타분한 사람이 되어 세상 그 누구도 가까이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평가하고 도무지 세상과 타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은 일상을 살면서 비슷한 일만을 반복적으로 하여 생각이 고정된 틀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여행은 우리에게 생각의 자유를 허락함으로 답답하고 고리타분한 사람이 되지 않게 만든다. 

    그러나 무조건 일상에서 탈출하는 여행만으로는 안 된다. 여행이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그저 스트레스나 풀고 돌아오는 정도로 그친다면 특별히 나아질 것도 없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똑같은 생각을 하며 살기 때문에 결국은 세월과 함께 답답하고 고리타분한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런 여행이라면 친구들과 주변에서 재미있는 거리를 찾아 실컷 노는 것으로도 대처할 수 있다. 

    유익한 깨달음을 얻어 거듭난 인생을 살 수 있는 여행은 어떤 여행인가. 깊은 관심과 관찰을 동반한 여행이다. 여행을 하며 접하는 새로운 환경을 눈으로만 보며 그저 스쳐 지나가지 말고 생각을 모아 관찰을 해야 기억의 저장고에 쌓인다. 

    여행을 하며 접하는 사물을 마음을 열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두가 배울 것투성이다. 그렇게 배움을 얻으면 그것이 곧 깨달음이 된다. 여행을 통해 배우고 깨달을 것이 어디 자연뿐이랴. 새로운 곳에서 나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그들의 문화를 배우게 되면 그것이 자연과 여러 환경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큰 깨달음을 줄 수도 있다.

    우리는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하며 그곳의 인문과 지리를 접한다. 주지하다시피 인문은 사람들의 정서와 생각, 행태, 인심, 예술혼 등 인간이 일구어놓은 다양한 흔적, 즉 문화이며, 지리는 천혜의 자연 등 사람의 문화 이외의 모든 것이다. 

    그런데 인문과 지리 모두가 골고루 발달된 곳은 드물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인문이 발달되어 있다 싶으면 지리가 좋지 않고, 지리가 발달됐다 싶으면 인문, 다시 말해 사람들의 인심이 좋지 않은 경우를 종종 발견한다. 각박한 세상이 각박한 인심을 만들고, 각박한 인심이 욕심을 채우려 아름다운 자연을 마구 훼손한다. 물론 이러한 상황을 목도하는 중에도 깨달음이 있다. 그러나 유희에만 빠져 깊은 관심과 관찰을 하지 않으면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특별한 기억과 깨달음이 없이 일상으로 돌아올 뿐이다. 

    여행을 통해 생각의 범위를 확장하고 싶으면 가능한 혼자나 둘이 떠나는 여행이 좋다. 여럿이 함께 떠나는 여행은 그저 놀다 오는 정도이지 유익한 깨달음을 주는 여행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찌든 일상에서 벗어나 유쾌하게 놀다오는 여행도 나름의 가치가 있지만 여행이 주는 교훈을 생각한다면 여행에 좀 더 깊이 있는 의미를 담아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1960년대만 해도 보릿고개에 시달렸지만, 오늘날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고 해외여행의 바람이 불면서 해마다 해외로 나가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이제 해외여행은 특수한 사람만이 누리는 특혜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누릴 수 있는 일상사가 되었다.
      인생도 여행이다. 여행을 떠나라. 저 머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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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경충일보.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9-10-10 13:46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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