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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역사의 물줄기를 돌리는 사건이 되다
2019-12-14 오후 11:54:28 경충일보 mail kcn5894@hanmail.net

     

    최서경 일신여고 1

    지난 2017년 개봉한 <1987>이라는 영화에서는 전두환 군가 독재시절에 발생한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다. 당시 전두환 정부는 쿠데타와 학살, 고문, 폭행, 은폐, 조작, 부패 등으로 점철된 비민주적 군사 정권으로 국민의 권리를 탄압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취하려는 정치를 하자, 학생들은 민주화 운동을 하기 시작했고 그 중 서울대 학생 박종철을 빨갱이로 몰아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했고 이 과정에서 박종철 열사가 사망하게 되었다.

    경찰은 그 사실을 은폐하려 하였지만 경찰이 민주화 운동을 하던 무고한 학생 하나를 물고문 하다가 사망한 사실이 언론에 밝혀지게 되면서 국민들은 앳된 청년의 죽음에 분노했다.

    故이한열 열사도 분통해 하던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부패한 정부가 타락한 정치를 펼쳐 국민이 고통받을 때 들고 일어난 것은 대부분 학생들이었다. 80년대 학생들은 부패한 전두환 정권의 정치에 더 이상 고통받길 원치 않았다. 그래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젊고 똑똑한 젊은이들이 용기를 내어 그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그런 젊은이들을 보면서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따라서 용기를 내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전국적으로 민주화 운동이 확산되게 되었다.

    권력을 쥔 사람들은 그 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의 조건과 행동을 통제할 뿐만이 아니라 사회 여론, 사고와 관습까지도 통제하며 쉽게 장악한다. 소수의 헌신적인 사람들이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저항을 하거나, 권력의 치부가 드러나는 사건이 생겨 권력의 단단한 보호막에 작은 균열이 생겨도, 권력은 자신이 가진 다양한 힘을 활용해 쉽게 균열을 봉합해간다.

    그러나 어느 순간 떨면서도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진실에 관심을 갖고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면 그 균열은 쉽게 봉합하기 어려워진다. 점차 많은 사람들이 그 균열 사이로 어렵게 빠져나와 희생자를 애도하며 더 큰 진실을 밝혀내려 노력하고, 뿔뿔이 흩어진 무기력한 시민들이 연대감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그 당시 어느 그 누구도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잡혀가 물고문을 당하고 죽은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역사의 물줄기를 돌리는 사건이 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사건은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발생한다. 사람들이 한 젊은 청년에 어이없는 죽음에 분통해 하면서 의식 전환이 촉구되면서 6월 항쟁은 급속도로 퍼져 나갔고 더 발전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전두환 정권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게 되었다.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존재감이 없었던 평범한 작은 사람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작은 행동의 변화를 보일 때, 역사가 바뀌는 것이다.

    1970년대 경제성장의 주인공이자 희생자였던 여성노동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1960년대에서 1970년대의 시기를 한국 전쟁 이후 피폐해지고 황폐화된 국토를 살리고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룩하게 된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런 급격한 경제 성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많은 정책 아래에서 온 국민이 이루어 낸 성과이다.

    60년대에는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목은 값싼 노동력과 임금에 바탕을 둔 노동집약적 상품이었다. 예를 들어 노동집약적 상품에는 섬유직물, 의류, 가발, 신발 등과 같은 것들이 있는데 이 상품들을 생산하는데 여성노동자들의 공이 컸다.

    70년대로 넘어와서 중화학공업에 들어섰지만 노동집약적 상품이 수출품목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여전히 절반 가까이 되었다. 즉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밤낮없이 공장에서 기계처럼 일을 하며 상품을 제조했던 여성노동자들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 때 당시에는 늘 그래왔듯이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대우를 받았고 근무시간과 임금지불 정도에서도 남성과 여성이 큰 차이가 발생하였다. 대부분의 여성노동자들은 남성노동자들과는 달리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조금만 일을 하다가 곧 시집을 가고 자식을 낳아서 키울 것이기 때문에 단기간 일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러므로 경제성장의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남성노동자와 같은 취급을 받지 못하였다. 

    현재 사회는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 세계가 글로벌화가 되어가고 대한민국도 세계 각지에 있는 여러 나라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문화가 유입되기도 한다. 새로운 문화의 유입과 잘못된 편견과 사고방식의 틀을 깨면서 여성들의 인권을 위한 운동이 확산되게 되었다.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남성들보다 더 많고 고된 일을 하지만 남성의 반도 안되는 대우를 받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그들의 권리를 요구하고 민주주의적 노조형성을 원했다. 그 과정에서 나체시위와 똥물테러를 다 견디면서 그들의 권리를 끊임없이 요구하였다.

    나체 시위를 할 당시 여성방직노동자 중 한 명은 “우리의 친구, 우리의 동지만을 부끄럽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벗어 정의를 위해 함께 부끄러워집시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더 큰 역사적 가능성도 보여준 사건이다.

    한국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여성노동자들의 역할, 그들이 겪어야 했던 희생과 고통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성노동자들은 수적으로 결코 소수가 아니었다. 다만 권력관계에서 제일 낮은 대우를 받았을 뿐이지 그들은 경제성장의 중심에 서있었다. 즉 역사를 바꾸는 건 그 상황의 문제점을 알고 고쳐 나가려는 진보적인 발자취와 용기이지 성별에는 관계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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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경충일보.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9-12-14 23:54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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