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온 취재본부장
지난 토요일, 딸과 외손자들이 우리 집에 왔다.
손자들은 할머니가 보고 싶을 때마다 전화를 한다. 이날도 할머니가 보고 싶다며 “가도 돼요?” 하고 물었다. 아내는 “그래, 오면 좋지.” 하고 다정하게 대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점심때가 지나자 딸과 손자들이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손자들에게 주려고 복숭아를 깎았다. 아이들은 “할머니가 주는 복숭아가 달고 맛있어요.” 하며 냠냠 맛있게 먹었다.
과일을 먹고 난 손자들은 밖에 나가자고 졸랐다. 날씨가 무척 더웠지만 손자들을 위해 오늘 하루쯤은 신나게 놀아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차를 몰아 괴산으로 향했다. 괴산은 계곡과 숲이 많아 더운 여름날 아이들과 놀기에 좋은 곳이다.
괴산에 도착해서 어디로 갈까 잠시 궁리하다가 쌍곡계곡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손자들과 아내, 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다 보니 어느새 쌍곡계곡에 도착했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계곡은 피서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주차장은 이미 차량으로 가득 차 있었다. 차를 세울 곳이 어디 없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빈 공간 하나가 눈에 띄었다. 다른 차가 주차하기 전에 얼른 차를 세웠다.
손자들은 계곡이 보이자 신이 나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혹시라도 넘어질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아내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천천히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 쪽으로 걸어갔다.
좋은 자리는 먼저 온 사람들이 이미 돗자리를 펴고 쉬고 있었다. 우리도 앉아서 쉴 만한 곳을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마침 아이와 함께 온 젊은 부부가 한참 놀다가 짐을 싸고 있었다. 잠시 기다렸다가 그들이 떠난 자리에 돗자리를 폈다.
자리를 잡기가 무섭게 손자들은 뭐가 그리 급한지 계곡물에 몸을 담갔다.
“할아버지, 물이 너무 시원해요!”
손자들은 할아버지도 물속으로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나도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흐르는 물에 발을 담갔다. 정말 시원했다.
한참 동안 발을 담그고 있으니 시원하다 못해 차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발만 물에 담갔을 뿐인데도 온몸의 더위가 싹 가시는 것 같았다. 간간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정신까지 맑게 해주었다.
도심의 탁한 공기만 마시다가 숲이 우거지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서 청량한 공기를 마시니 마음마저 상쾌해졌다.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은 얕은 계곡에서 튜브를 가지고 더위도 잊은 채 신나게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재잘거리며 뭐가 그리 좋은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계곡에 울려 퍼졌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마땅히 놀 만한 공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과 냇가로 가서 물장난을 치며 하루 종일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옷을 흠뻑 적셔서 돌아오면 부모님께 혼난 적도 수없이 많았다.
지금이야 그늘이 있고 깨끗한 수영장이 곳곳에 있지만, 당시에는 수영장을 구경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비록 환경은 지금보다 열악했지만, 오히려 지금보다 추억이 많고 소소한 재미가 있었던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절기상으로 입추가 지났다. 그래서인지 아침저녁으로 창문을 열어 놓으면 제법 시원한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온다. 더위가 언제 꺾일까 싶었는데, 어느새 가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계절은 누가 오지 말라고 해도 때가 되면 스스로 찾아온다.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김없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우리 곁을 찾아올 것이다.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저마다 색다른 풍경을 자랑한다. 조금만 기다리면 산과 들이 울긋불긋 곱게 물들고,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벌써부터 곱게 물든 단풍을 볼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렌다.
손자들과 함께 놀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돌아갈 시간이 되어 계곡물에서 나왔다. 짐을 싸고 자리를 정리한 뒤 돌아서는데, 하늘을 물들인 노을이 정말 아름다웠다.
“가을에 단풍이 들면 다시 오자.”
아이들과 약속을 하고 계곡을 뒤로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손자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니 마음이 참 행복했다. 더운 날씨에 몸은 조금 지쳤지만, 손자들과 함께 보낸 하루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다.
다시 가을이 찾아오면 아이들과 함께 이곳 쌍곡계곡을 찾아오고 싶다. 그때는 계곡을 따라 곱게 물든 단풍을 바라보며 오늘의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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