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에세이]눈은 여전히 내리는데, 정은 사라졌다
김지온 취재본부장
예전엔 겨울이 참 좋았다.눈이 내리면 괜히 마음이 설레고, 아무 목적 없이 오솔길을 걷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산속 소나무 가지마다 소복이 쌓인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누군가 정성스레 눈뭉치를 하나하나 올려놓은 듯 정겨웠다.
눈 쌓인 길을 걸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복잡한 잡념마저 말끔히 씻겨 내려가 마음을 쉬게 하는 최고의 힐링 공간이었다.
눈이 오는 날이면 자연스레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또래 친구들과 동네 골목길에서 눈을 뭉쳐 눈싸움을 하던 시간들. 편을 나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눈을 던지고, 몰래 상대 옷 속으로 눈을 넣으면 “아이, 차가워!” 하며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던 모습에 괜히 통쾌해 웃음이 터지곤 했다.
그 시절 우리는 지금처럼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이웃 간의 정과 친구 사이의 우정만큼은 유난히도 깊었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던 인심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가고, 정이라는 말은 점점 낯설어졌다. 아파트 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다 극단적인 사건까지 벌어지는 냉혹한 세상이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은 찾아보기 힘들고, 세상은 점점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필자는 시골 출신이라 농촌의 정서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한다. 집안에 큰일이 생기면 동네 사람들이 내 일처럼 나서 도와주고, 슬픈 일은 함께 울고 기쁜 일은 함께 웃었다.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훤히 알 만큼 이웃은 곧 가족이었다.
그러나 요즘 농촌마저 예전 같지 않다.도시처럼 따뜻한 정은 사라지고, 서로를 질투하고 경계하는 분위기가 짙어졌다. 감싸주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던 마음은 이제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듯하다.
귀농·귀촌을 선택해 시골로 들어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퇴직 후 경치 좋고 물 맑으며 인심이 후한 곳에서 인생 2막을 설계하겠다는 야심찬 꿈을 안고 내려오지만, 원주민의 텃세를 견디지 못해 다시 떠나는 이들도 있다.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기에 그런 결정을 했을까 생각하면 안타까움이 앞선다.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의 시대에 농촌에서 살겠다고 찾아오는 이가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기꺼이 손을 내밀어야 한다. 내 편, 네 편을 가르고 외지인이라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봐서는 안 된다. 정착해 살아가면 그곳이 곧 고향이고, 주민은 가족과 다름없다.
지금의 농촌에는 빈집이 많고, 대부분이 고령의 노인들이다.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살면 동네에 활력이 돌고,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로 지역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 편협한 생각은 결국 마을의 발전을 가로막을 뿐이다.
눈 내리던 겨울날처럼, 예전 시골의 아름다운 세시풍습과 정겹고 따뜻한 정이 다시 돌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날을 조용히, 그러나 간절히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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