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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10-21 11:10 (수)
데스크칼럼

[칼럼]운명은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김
김지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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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온 취재본부장

사람은 저마다의 운명을 안고 태어난다고 한다. 사전적 의미로 운명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다고 여겨지는 삶의 흐름이나 결과를 뜻한다. 

 

동양에서는 사주나 인연, 천명과 같은 개념으로 이를 설명해 왔고,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 신화 속 모이라이가 인간의 삶을 실로 엮으며 운명을 관장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운명을 완전히 고정된 무엇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환경과 선택, 그리고 노력이라는 요소들이 어우러져 삶의 방향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운명이다”라는 말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을 뜻하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여지를 품고 있다.

 

운명은 예고 없이 찾아와 관계를 갈라놓기도 한다. 그렇기에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 함께하는 시간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인연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게 된다.

 

타인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먼저 상대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관계는 거창한 사건으로 흔들리기보다, 사소한 말과 태도에서 균열이 시작된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 남는 상처가 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때로 분노한다. 그러나 분노가 일어나기 전에 자신을 제어할 줄 아는 힘이 필요하다. 분노는 대개 상대보다 자신을 더 깊이 상처 입힌다. 그래서 겸손과 절제는 나약함이 아니라 관계를 지키는 용기다.

 

살아가며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유난히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애써도 소통이 어려운 사람도 있다. 이때 자신의 주장만을 강하게 내세우면 소통은 사라지고 갈등만 커진다. 대화에는 공감과 배려가 필요하다. 상대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는 넓은 마음이 갈등을 대화로 이끄는 힘이 된다.

 

역지사지의 자세와 타인의 아픔을 함께 나누려는 포용력은 인간관계의 핵심이다. 이해와 인내, 그리고 양보가 없다면 이별은 자연스러운 결과가 되고 만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따뜻한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흔들림 속에서도 오래 함께할 수 있다.

 

결국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거창하지 않다. 말 한마디에 신중하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며, 오늘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 그것이 운명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도 관계를 지켜내는 가장 단단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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