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괴산군 웰다잉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전통 한지로 수의를 만들고 있다
충북 괴산군노인복지관의 한 강의실.
하얀 한지 천 위로 바늘이 천천히 오가고, 실이 고요히 매듭을 만든다.
“이건 내가 입고 떠날 마지막 옷이에요.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요.”
72세 최복순 씨는 바늘을 잡은 손끝을 떨림 없이 단단히 쥐며 미소를 지었다.
괴산군노인복지관이 보건복지부의 노인복지 민간단체 지원사업으로 진행 중인 ‘웰다잉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지난 10월 13일부터 오는 12월 19일까지 이어지는 이 프로그램은 ‘삶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준비하는 법’을 배우는 자리다. 괴산 연풍면의 한지박물관과 협력해 전통 한지로 수의를 직접 제작하며, 단순한 공예활동을 넘어 ‘삶을 정리하는 과정’이 되고 있다.
최복순 씨는 “처음엔 굳이 수의를 직접 만들어야 하나 싶었어요. 그냥 깨끗한 옷을 입으면 되지 않나 생각했죠. 그런데 직접 바느질을 해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라며 “살다 보면 언젠가는 떠나야 하잖아요. 내가 떠날 준비를 스스로 하는 건 슬픔이 아니라 감사예요. 바느질하면서 내 인생을 되짚게 돼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젊은 시절 학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가르쳤고, 지금은 손주들에게 인생의 온기를 전한다. “손주를 안아보면 느껴요. 내가 떠난 자리가 누군가에겐 새로운 자리가 된다는 걸요. 죽음이 끝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공간을 내어주는 일이라는 걸요.”
68세 권혁숙 씨도 바느질에 몰두한 채 고개를 들었다.
“살다 보면 마음이 꼬이고 원망도 생기잖아요. 그런데 바늘로 옷을 만들다 보면 그 마음이 하나씩 풀려요. 바느질이 인생 같아요. 엉키고, 풀리고, 다시 매어지고. 그렇게 정리되는 거죠.”
그는 “내 수의라니 처음엔 망설였는데, 하다 보니 마음이 편해져요. 삶을 다림질하듯 후회와 미련이 조금씩 펴지는 기분이에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이번 프로그램은 단순한 웰다잉 교육을 넘어,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자기 삶을 긍정적으로 돌아보는 ‘관계 회복형 복지’를 지향한다. 한지 수의 제작 외에도 ‘영상 자서전 만들기’가 함께 진행돼, 어르신들이 자신의 생애를 직접 기록한다.
황지연 괴산군노인복지관장은 “웰다잉은 죽음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삶을 더 충실히 살아가도록 돕는 일”이라며 “어르신들이 자기 삶에 대한 자긍심을 되찾고, 가족과의 관계를 다시 이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마지막 옷을 짓고, 누군가는 생전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남긴다.
그들의 손끝에서 완성되는 한 벌의 수의는 사실상 ‘또 한 번의 삶’이다.
바늘을 내려놓은 최복순 씨는 말했다.
“떠남을 준비하면서 오늘을 배웁니다. 이제 남은 시간이 두렵지 않아요. 오늘 하루가 선물처럼 느껴져요.”
괴산의 ‘웰다잉’은 결국 ‘잘 죽는 법’이 아니라,
‘잘 살아온 나를 안아주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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