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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에 물든 650년의 시간, 아산 맹씨행단을 거닐다

  • 김지온 기자
  • 입력 2025.11.14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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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650년 은행나무 아래서 만나는 가을, 아산 맹씨행단 (1).jpg

가을빛이 완연해지면 아산 배방읍에 자리한 맹씨행단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든다.

이곳은 세종대왕 시절 태평성대를 이끈 조선 초기의 명재상,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 1360~1438)과 그의 부친 맹희도(孟希道, 1337~?)가 거처하며 후학을 가르쳤던 곳이다.

 

쌍행수가 맞이하는 고즈넉한 풍경

 

행단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두 그루의 거대한 은행나무, 일명 ‘쌍행수’다.
맹사성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이 은행나무는 650년 넘게 이 땅을 지켜온 산 증인이다. 은행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둘러친 축대와 단 역시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행단(杏壇)’이라는 이름은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고사에서 비롯됐다. 맹사성 역시 이곳에서 후학을 길렀다고 하니, 이름 그대로의 의미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여름 한 그루가 집중호우로 손상을 입었지만, 예전 1987년의 큰 수술을 견뎌낸 것처럼 올가을에도 당당히 잎을 틔웠다. 세월의 풍파를 이겨낸 은행나무 앞에서는 절로 숙연한 마음이 든다.

 

소박함 속에 깃든 청백리의 정신

 

은행나무 옆에는 고려 말에 지어진 고택이 자리한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민가로, 여말선초의 건축 양식을 간직한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재상 가문의 집이라기엔 구조와 규모가 놀라울 만큼 소박하다. 낮은 처마, 담백한 마루, 단정한 선이 돋보이는 이 집에서는 청백리 맹사성의 검소한 삶의 태도가 자연스레 느껴진다.

 

고택 뒤편에는 세덕사(世德祠)가 있다. 맹사성과 그의 조부 맹유, 부친 맹희도 세 사람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담장 밖 돌길을 따라 조금 더 걸으면 구괴정(九槐亭)이 나타난다. 세종 때 삼정승이었던 황희·맹사성·권진이 함께 아홉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지는 정자다.

 

걷는 동선이 짧고 완만해, 천천히 걸으며 사색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가을의 절정, 배방산 단풍과 함께

 

가을이면 고택 마당에서 바로 마주 보이는 배방산이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든다.
고즈넉한 한옥의 처마 아래서 황금빛 은행나무와 단풍든 산을 바라보는 시간은, 이 계절에만 누릴 수 있는 작은 호사다.

 

고불맹사성기념관, ‘신창맹씨 온양댁’ 특별전

 

고택을 한 바퀴 돌아본 뒤에는 맞은편의 고불맹사성기념관을 찾아보자.
이곳에서는 맹사성의 생애와 유물, 그와 관련된 여러 설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백옥으로 만든 횡피리다.
평생 가마 대신 검은 소를 타고 다니며 피리 부는 것을 즐겼다는 그의 일화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기념관 마당에는 소를 타고 피리 부는 맹사성의 동상도 세워져 있다.

 

현재 기념관에서는 오는 11월 30일까지 ‘신창맹씨 온양댁’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2025~2026 아산 방문의 해를 맞아 대전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던 유물을 대여해 선보이는 자리다.

 

조선의 일상과 한글의 숨결, 500년 전의 편지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한글 편지다.
현재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로, 훈민정음 반포 40여 년 뒤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안도(함경도)에서 근무하던 군관 **나신걸(羅臣傑, 1461~1524)**이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마음을 담아 아내인 맹사성의 증손녀에게 보낸 편지다.

한글이 조선인의 일상 언어로 빠르게 정착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2023년 보물로 지정됐다.

이 밖에도 짧은 홑저고리, 옅은 하늘색 솜치마, 무명 바지, 쪽빛 장의 등 조선 전기 여성 복식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부장품들이 함께 전시된다.

500년 전 한 여성의 일상과 정서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유물들이다.

 

역사와 낭만이 어우러진 가을 여행지

 

쌍행수와 배방산 단풍이 곱게 물드는 지금, 맹씨행단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다.
청백리의 숨결이 깃든 고택을 거닐고, 조선의 언어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전시를 관람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을의 낭만과 사색이 함께 찾아온다.

 

올가을, 아산 맹씨행단과 고불맹사성기념관에서 650년의 시간과 황금빛 계절을 동시에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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