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온 취재본부장
공무원의 근무기강 해이가 도를 넘었다. 최근 충북도지사 직인이 찍힌 공식 문서에 사적인 연인 간 대화가 담겨 배포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단순한 실수로 넘기기에는 사안의 성격과 파장이 결코 가볍지 않다.
충북도는 지난 24일, ‘2026년도 스마트 축산장비 패키지 보급사업’과 관련한 공문을 도내 11개 시·군에 발송했다. 해당 공문은 사업 내용의 변동 사항을 알리는 공식 문서였다. 그러나 문제는 공문의 하단 ‘붙임’ 부분에서 드러났다. 축산 정책과는 전혀 무관한 연인 간 사적인 대화 내용이 그대로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도지사 직인이 찍힌 공식 공문에 사적 대화가 실려 시.군에 회람됐다는 사실은 실수를 넘어선다. 이는 공직자의 기본적인 직무 태만이자, 조직 전반의 공직기강이 얼마나 느슨해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사안이 알려지자 해당 문서는 순식간에 온라인을 통해 확산됐고, 비판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도민들이 분노한 지점은 단순히 ‘사적 문구’ 때문이 아니다. 공적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후 충북도가 내놓은 해명이다. 도는 “공문 작성 과정에서 담당자가 메신저로 보내기 위해 작성해 둔 개인 메시지가 복사된 상태로 문서에 붙여졌고, 글자가 흰색으로 처리돼 전자문서상에서 보이지 않아 걸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해명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오히려 도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변명에 가깝다.
개인 메시지라면 개인 기기에 따로 저장하거나 업무 공간과 명확히 분리하는 것이 상식이다. 공적 업무가 이뤄지는 환경에서 사적 내용을 관리하지 못한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더구나 해당 문서는 담당자 선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도지사 직인까지 찍혔다. 여러 단계의 검토 과정 중 누구도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조직 전체의 안일함을 보여준다.
‘설마 문제 없겠지’라는 안이함, ‘이미 누군가 봤을 것’이라는 무책임한 추측이 결국 이런 결과를 낳았다. 한 직원의 실수와 조직의 허술한 관리가 충북도 전체를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행정의 신뢰는 작은 부주의 하나로도 쉽게 무너진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킨 셈이다.
충북도는 이번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직원 근태 관리를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대책으로는 부족하다. 근무기강 점검이라는 추상적인 말보다, 공문 작성·결재 시스템 전반에 대한 철저한 점검과 책임 있는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
이번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한다면, 공직 사회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공문 한 장에 담긴 사적 대화는 개인의 부주의를 넘어 공직 윤리의 현주소를 드러낸 경고다. 충북도는 이번 일을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 무너진 근무 태도와 해이해진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것이 행정을 맡긴 도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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