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온 취재본부장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아이들에게 흔히 던지는 질문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아직 모르겠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꿈이 없는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어쩌면 꿈이 없는 것이 아니라 꿈을 발견할 만큼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지는 책상 앞에서만 알아내기 어렵다. 교과서와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배울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자신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직접 보고, 듣고, 만나고, 부딪혀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들의 글로벌 진로체험은 단순한 해외여행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세종시교육청이 추진하는 글로벌 진로체험은 세종시 중학교 3학년 학생 전원 약 5,400명을 대상으로 2027년 초 최대 5박 7일 동안 국내외 진로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사업비는 200억 원이며 세종시교육청이 직접 운영한다.
학생들은 자신의 관심과 진로에 따라 글로벌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을 방문하고 미래산업과 산업체 현장을 체험한다. 전문가와 글로벌 멘토를 만나 진로 상담을 받고, 스타트업 창업 프로그램과 팀 프로젝트에도 참여한다.
방문지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대만, 일본, 미국, 캐나다, 스위스 등이다. 해외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국내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숫자만 보면 5,400명의 학생과 200억 원이라는 큰 사업이다. 그래서 이런 사업을 두고 ‘해외여행에 막대한 예산을 쓰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비행기를 타느냐가 아니다.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질문하고, 무엇을 자신의 진로와 연결하느냐가 핵심이다.
해외 현장체험학습의 사례를 보면 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호텔관광고등학교 2학년 학생 46명은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3박 4일간 홍콩과 마카오에서 글로벌 현장체험학습을 진행했다.
단양군의 해외 수학여행 경비 지원사업을 통해 학생 1인당 125만 원을 지원받았고, 저소득층 학생은 개인 부담금도 전액 지원받았다.
학생들은 호텔과 복합리조트, 관광지 등을 직접 방문했다. 마카오에서는 4·5성급 호텔 인스펙션과 복합리조트 견학을 통해 호텔 서비스와 운영 방식의 차이를 비교했고, 홍콩에서는 도시 브랜딩과 관광 스토리텔링, 문화·테마파크 관광 등을 체험했다.
교실에서 배운 호텔·관광산업이 실제 현장에서는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전공에 대한 이해가 막연한 지식에서 구체적인 경험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괴산오성중학교 학생들의 일본 연수도 마찬가지다.
1학년 학생 19명과 교사 4명은 지난 9월 7일부터 11일까지 4박 5일간 일본 오사카와 교토를 찾았다. 괴산군 교육발전특구 사업의 하나로 괴산군이 전액 지원했다.
학생들은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경험하고 첨단 과학과 생태, 창의적 문화 콘텐츠를 직접 접했다. 교토의 아라시야마·청수사·후시미이나리, 오사카의 오사카성·우메다 공중정원, 오사카 시립과학관·카이유칸·USJ 등을 방문했다.
역사책에서 읽던 장소를 직접 보고, 과학관에서 체험하고, 다른 나라의 문화 콘텐츠를 접하는 경험은 교실에서 얻기 어려운 배움이다.
이런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은 본 만큼 생각하고, 경험한 만큼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꿈을 가져라”고 말하면서 정작 아이들이 꿈을 발견할 수 있는 경험은 충분히 제공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입시 경쟁 속에서 학생들은 하루 대부분을 학교와 학원, 책상 앞에서 보낸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공부는 넘쳐나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진로교육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진로는 적성검사 한 번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진로상담 한 번으로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여러 직업을 접하고 낯선 환경을 경험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길을 조금씩 좁혀가는 과정이다.
특히 세종처럼 진로체험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이라면 학교 밖 경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다만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글로벌 진로체험이 성공하려면 ‘어디에 다녀왔느냐’보다 ‘무엇을 남겼느냐’가 중요하다.
세종시교육청이 구상하는 사업도 단순한 해외체험으로 끝내지 않고 학교 진로 프로젝트, 진로탐험, 진로 포트폴리오 작성, 진로성숙도 검사, 고교 선택 상담으로 이어지도록 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하다.
해외에서 찍은 사진 몇 장과 기념품만 남는다면 값비싼 여행에 그칠 수 있다. 반대로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이런 일을 좋아한다”, “이 분야를 더 공부해 보고 싶다”, “내가 생각했던 직업과 실제 현장은 다르구나”라는 질문을 갖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진로교육은 정답을 알려주는 교육이 아니라 질문을 갖게 하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놓쳐서는 안 될 것은 기회의 격차다.
어떤 학생은 부모와 함께 해외를 경험하고 다양한 직업인을 만날 수 있지만, 어떤 학생에게 해외는 TV나 인터넷 속에서만 존재한다. 가정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경험의 차이가 생기고, 그 경험의 차이가 다시 진로 선택의 차이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모든 학생에게 같은 결과를 보장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기회만큼은 공교육이 넓혀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학생들의 글로벌 탐험은 단순한 복지나 관광의 문제가 아니다. 경험의 격차를 줄이고 진로를 탐색할 기회를 넓히는 교육의 문제다.
물론 200억 원이라는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사업의 효과와 안전성, 프로그램의 질에 대한 꼼꼼한 점검도 필요하다. 학생들이 많이 다녀오는 것만으로 성과를 평가해서도 안 된다. 체험 전 교육부터 현장 활동, 체험 후 진로 설계까지 촘촘하게 연결돼야 한다.
그래야 ‘해외체험’이 ‘진로교육’이 된다.
아이들에게 “너는 커서 뭐가 될래?”라고 묻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아이들이 더 많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교실은 중요하다. 책도 중요하고 시험도 중요하다. 하지만 교실과 책만으로 아이의 미래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때로는 교실을 나서 낯선 도시의 거리를 걸어보고, 새로운 직업의 현장을 보고, 다른 나라의 학생들과 문화를 만나봐야 한다.
그 경험 속에서 자신의 생각이 바뀌고, 새로운 꿈이 생길 수도 있다.
나는 글로벌 진로체험의 가장 큰 가치를 바로 여기서 찾고 싶다.
아이들에게 정해진 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꿈을 발견할 수 있는 더 넓은 무대를 열어주는 것이다.
꿈이 없는 아이를 나무라기 전에, 그 아이가 얼마나 많은 세상을 경험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아이들의 미래를 책상 앞에만 가둬놓고 꿈을 가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모순이다.
우물 안에서 더 큰 꿈을 꾸라고 말하기보다, 우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 교육이 해야 할 진로교육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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