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시장 김경희
반도체는 이제 특정 기업이나 특정 산업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국가 전략자산이다. 그런 점에서 송석준 국회의원이 주도한「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의 국회 통과는 늦었지만 반드시 필요했던 결정이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법을 어디에서 어떻게 실현하느냐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은 대규모 공장 하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연구와 실증, 소재·부품·장비 기업, 숙련된 인력, 그리고 안정적인 공급망이 가까운 공간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산업은 비로소 움직인다. 세계 반도체 강국들이 클러스터를 단순한 집적지가 아니라 ‘공간 전략’으로 접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천은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주목해야 할 도시다. 이천은 제4차 수도권정비계획에서 용인·수원·화성·평택·안성과 함께 ‘스마트 반도체 벨트지역’으로 명시돼 있으며, 반도체 등 생산지원시설을 확충해야 할 대상지역이다. 이는 이천이 이미 국가 계획 속에서 반도체 산업을 떠받칠 역할을 부여받은 공간이라는 뜻이다.
현장 여건도 충분히 갖춰져 있다. 한국세라믹기술원 이천분원과 반도체종합솔루션센터가 기술을 뒷받침하고 있고, 반도체인재양성센터와 한국폴리텍대학 이천 반도체 융복합교육센터, 이천제일고와 반도체 특화 이천과학고 설립 추진까지 이어지는 전 주기 인재 양성 체계가 형성되고 있다. 여기에 이천의 대표 기업이자 글로벌 반도체기업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반도체 강소기업들이 함께 입지해 실증과 협업이 가능한 생태계가 현장에서 작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천은 자연보전권역이라는 이유로 공업용지 면적, 공장 규모, 환경 규제 등 중첩된 제약에 묶여 있다. 반도체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선언하면서도, 그 핵심 거점을 40년도 넘은 구법의 획일적인 규제로 관리하는 것은 분명한 정책적 모순이다. 지금 이천에서 작동하지 않는 반도체 전략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온전히 완성되기 어렵다.
이제 해법은 분명하다. 이천을 반도체 클러스터로 조속히 지정하고, 반도체 중심 첨단산업에 한해 규제를 정교하게 조정하는 규제 프리존으로 설계해야 한다. 이는 무분별한 완화가 아니라, 연구·실증 단계에서는 유연성을 높이고 환경 관리는 더 과학적으로 강화하는 전략적 선택이다.
반도체특별법은 이미 문을 열었다. 이제 그 문 안으로 무엇을 현실로 만들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국가계획에 포함돼 있고, 생태계가 작동하며, 즉시 실행이 가능한 공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접근이다. 이천을 반도체 클러스터로 지정하는 선택이 있어야, 반도체특별법은 현장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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