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온 취재본부장
행정구역의 통합은 지도 위 선을 다시 긋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주민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선택이며, 지역의 미래를 새로 설계하는 중대한 결정이다. 대전과 충남의 행정통합을 둘러싼 논의가 다시 주민투표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시와 시의회가 이미 통합을 추진해 온 상황에서 이제 와 주민의 뜻을 묻겠다는 행보를 두고 엇갈린 시선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절차의 정당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통합이 진정한 출발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민의 동의라는 단단한 토대 위에 서야 한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최근 행정안전부에 대전·충남 행정통합 주민투표 시행을 요구했다. 일각에서는 6·3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현실적으로 주민투표가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행정통합은 단순한 행정구조 개편이 아니다.
재정 운영, 행정서비스 체계, 생활권 변화, 지역 정체성 등 주민 삶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이런 중차대한 사안을 주민의 동의 없이 추진한다는 것은 지방자치의 근본 정신과도 어긋난다. 주민이 주인이라면, 그 의사를 묻는 절차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동안의 통합 논의는 광역의회 의결을 근거로 본격화되었다. 법적 절차를 따랐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으나, 충분한 주민 의견 수렴 과정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통합 논의가 구체화된 이후 추가적인 주민 의사 확인이 없었던 점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통합은 행정의 편의가 아니라 주민의 삶을 재편하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체계적인 로드맵과 세부 실행계획 없이 통합이 성급히 추진될 경우, 기대했던 시너지보다 혼란과 갈등이 더 커질 수 있다. 재정 부담은 어떻게 나눌 것인지, 청사와 행정기관의 배치는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각 지역의 균형 발전은 어떤 방식으로 담보할 것인지 등 구체적 청사진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통합은 ‘하지 않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물리적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은 갈등을 키우고, 그 후유증은 오랫동안 지역사회를 짓누를 것이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현실적 제약이 있더라도, 지금이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주민의 뜻을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주민투표가 가장 직접적인 방법일 수 있고, 공론화위원회나 권역별 공청회, 숙의형 토론 등도 병행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실질이다. 주민이 충분히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찬반 의견을 균형 있게 수렴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행정통합은 속도전이 아니다. 그것은 신뢰의 문제다. 주민의 신뢰 없이 출범한 통합은 출발부터 균열을 안은 채 항해를 시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반대로 충분한 숙의와 동의를 거친 통합은 지역의 역량을 하나로 모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갈등의 씨앗이 될 것인지,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인지는 결국 ‘주민을 얼마나 존중했는가’에 달려 있다.
대전·충남 행정통합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속도 조절이나 계산이 아니라, 주민의 뜻을 온전히 확인하려는 책임 있는 자세다. 주민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통합의 리스크를 줄이고, 지역의 미래를 안정적으로 설계하는 유일한 해법이다. 통합의 열쇠는 결국 행정도, 정치도 아닌 주민의 손에 있다. 그 원칙을 지킬 때 비로소 통합은 갈등이 아닌 희망의 이름으로 기록될 것이다.
BEST 뉴스
-
[데스크칼럼]세계를 경험하는 교육이 미래를 만든다
김지온 취재본부장 현대사회는 글로벌 시대다. 견문을 넓히고 새로운 세상과 접하기 위해서는 직접 해외에 나가 보고, 듣고, 체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내라는 ‘우물 안’에 머물러서는 넓은 세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교육 역시 교실 안에서 지식을 배우는 것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 -
[데스크칼럼]“사람은 본 만큼 생각하고, 경험한 만큼 꿈꿀 수 있다.”
김지온 취재본부장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아이들에게 흔히 던지는 질문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아직 모르겠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꿈이 없는... -
6,000원의 행복, 이 정도면 감동이다
김지온 취재본부장 사무실에서 한참 기사를 쓰고있는데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시간이 괜찮으면 함께 점심이나 먹자는 것이었다. 마침 선약이 없었던 터라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지인은 세종시 부강면에 있는 한 한식뷔페 식당의 주소를 알려주며 약속한 시간에 맞춰 오라고 했다. 취재 기사를 마무리하고 ... -
[데스크칼럼]행정수도 특별법, 이번에는 반드시 매듭지어야
김지온 취재본부장 경제수도 서울, 행정수도 세종이라는 구상이 현실화하고 있다. 정부는 13일 수도권에 있는 중앙행정기관 44곳을 2027년부터 2031년까지 단계적으로 세종시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발표가 나오자 지역 정가는 물론 시의회와 시민단체도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조상호 세종시장 역시 이... -
[데스크칼럼]의정비 인상, 시민이 납득할 근거가 먼저다
김지온 취재본부장 각 지자체의 재정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시의원들의 내년도 월정수당은 크게 오를 전망이다. 실제로 청주시의회 의원들의 내년도 월정수당은 7%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청주시의회는 당초 내년도 월정수당을 14.1% 인상해 달라고 의정비심의위원회에 요구했다. 그러나 의정비심... -
[데스크시각]상가공실 발상을 바꿔야 해결할 수 있다
김지온 취재본부장 충청권 상가 공실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자체마다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온갖 지혜를 짜내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 세종을 비롯한 충청권 상가시장에 적색불이 켜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게 문을 닫은 빈 점포가 늘면서 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