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온 취재본부장
민족 대명절 설 연휴가 시작됐다. 올해는 5일간의 연휴에 이틀 연차를 더하면 최장 9일까지 쉴 수 있다. 객지에 흩어져 지내던 가족과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여 덕담을 나누고 정을 쌓는 시간이다. 그러나 따뜻해야 할 설밥상에는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정치다.
요즘 정치권은 여야 간 극한 대치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상대를 향한 비판과 공격만 있을 뿐, 협치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은 이러한 정치 현실에 깊은 실망을 느낀다. 서로를 탓하며 힘겨루기만 하는 사이, 정작 국민의 삶은 뒷전으로 밀려난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경기 침체의 그늘은 짙어지고 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지금의 현실은 고통 그 자체다. “금융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하소연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절박한 외침이 정치권을 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의 또 다른 화두는 ‘행정통합’이다. 최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대전·충남, 광주·전남, 대구·경북의 행정통합 특별법을 의결했다. 그러나 대전광역시와 충청남도의 통합 논의는 순탄치 않다. 광주·전남, 대구·경북과 달리 대전·충남의 시도지사는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통합 법안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행정안전부에 주민투표 실시를 요청한 상태다. 만약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갈등은 더욱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가 제기하는 핵심 쟁점은 중앙정부 권한 이양, 세제 조정, 서울급 지위 부여 등이다. 특히 광주·전남 특별법안과의 차별성 문제는 지역민의 반발을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작 충청권 여야 국회의원들의 존재감은 크지 않다. 지역의 중대한 미래가 달린 사안임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문제 해결에 힘을 모으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행정통합은 단순히 행정구역을 합치는 문제가 아니다. 지역의 권한, 재정, 미래 성장 전략이 걸린 중대 사안이다. 내용은 비어 있고 형식만 남은 ‘껍데기 통합’이라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한편 김민석 국무총리는 “2월 말까지 통과하지 않으면 통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26일 본회의 표결 처리를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속도가 능사는 아니다. 통합은 필요할 수 있지만, 졸속은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될 뿐이다. 충분한 대화와 숙의, 지역사회와의 진정성 있는 소통이 우선되어야 한다.
설 연휴는 민심을 가장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는 시간이다. 정치권은 귀를 열어야 한다. 통합이 목적이 아니라, 지역 발전과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이 목적이어야 한다. 갈등을 덮어둔 채 법안을 강행한다면 통합 이후에도 후유증은 오래갈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전이 아니라 신뢰 회복이다. 중앙과 지방, 여야와 지역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조율에 나설 때 비로소 ‘통합’은 힘을 얻는다. 설밥상에서 오가는 쓴소리를 정치가 겸허히 받아들일 때, 국민은 다시 정치에 희망을 걸 수 있을 것이다. 통합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을 향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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