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온 취재본부장
설 명절 연휴가 시작됐다. 집 안에는 차분한 기운이 감돌고, 여행 가방을 여미는 손길에도 설렘이 묻어난다. 고향으로 향하는 길. 그곳에는 형님이 계신다. 직업군인으로 긴 세월을 복무한 뒤, 자신을 키워준 고향을 지키겠다며 다시 돌아오신 분이다. 그 묵직한 선택이 고맙고도 든든하다.
‘고향’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마음을 따뜻하게 데운다.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고, 오래 묵은 기억들이 안개처럼 스며든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충북 괴산, 첩첩산중에 안긴 작은 시골 마을이다. 한때는 비가 내려야만 모내기를 할 수 있을 만큼 천수답이 많았던, 넉넉지 않던 고장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그 조용한 산골 마을은 이제 많은 이들이 찾는 여행지가 되었다. 그 중심에는 바로 **괴산 산막이옛길이 있다.
산막이옛길은 약 4~7km 구간으로 이어진다. 대부분이 나무 데크와 완만한 흙길로 조성되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숲과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깊은 산속 품에 안긴 듯한 기분이 든다.
길 곳곳에는 전망대와 돌탑, 전설을 품은 바위들이 자리해 발걸음을 붙든다. 이야기를 상상하며 걷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느릿하게 흐른다.
이 길은 특히 괴산호를 끼고 돌아 더욱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잔잔한 호수와 병풍처럼 둘러선 산세가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펼쳐놓은 듯하다. 맑은 날이면 호수 위에 산 그림자가 또렷이 내려앉아, 사진을 찍는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연하협 구름다리와 전망대에 오르면 산과 물이 빚어낸 장대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 마음속까지 환해진다.
봄과 여름에는 초록이 터널을 이루고, 가을에는 붉은 단풍이 산을 물들인다. 겨울이면 설경 속 고요가 깊어진다. 사계절 모두 아름답지만, 신록이 돋아나는 봄과 단풍이 절정인 가을은 특히 찬란하다. 자연은 계절마다 다른 얼굴로 이 길을 새롭게 빚어낸다.

산막이 마을에서는 유람선과 보트 체험도 가능하다. 물 위에서 바라보는 산막이옛길은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도 부담이 없다. 가벼운 운동화로 충분하지만, 일부 구간에서는 등산화가 조금 더 든든하다.
나는 2년 전, 이 길 근처에 작은 농막을 지었다. 고향의 숨결을 더 가까이 느끼고 싶어서였다. 주말이면 찾아와 밭에 심어둔 나무를 돌본다. 겨울에는 일이 많지 않아 발걸음이 뜸하지만, 봄이 오면 다시 분주해질 것이다. 잡초를 뽑고, 가지를 다듬고, 흙을 고르며 나무가 잘 자라도록 손길을 보탠다.
일을 하다 지치면 의자에 앉아 풍경을 바라본다. 맑은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면 생각이 맑아지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곳에서는 공기만으로도 치유가 된다. 어쩌면 이곳에서 글이 더 잘 써지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얀 종이 위에 문장을 한 줄씩 채워 넣는 시간, 무(無)에서 유(有)를 빚어내는 창조의 기쁨이 조용히 피어난다.
전국에는 이름난 명소가 많다. 그러나 내게 가장 소중한 곳은 언제나 고향의 산막이옛길이다. 산과 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풍광은 볼 때마다 새롭고, 마음을 씻어준다.
이번 설 명절, 가족과 함께 이 길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함께 걷고, 함께 웃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또 하나의 추억을 쌓는 시간.
고향은 단지 머무는 장소가 아니다. 다시 힘을 얻고,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자리다. 산막이옛길은 오늘도 말없이 그 자리에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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