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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이시, 네 알의 열매에 담긴 가문의 뜻

  • 김지온 기자
  • 입력 2026.02.16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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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온 취재본부장

명절이 되면 우리는 조상께 차례를 올린다. 후손들은 정성껏 음식을 마련하고, 마음을 모아 제를 올린다. 그 상 위에는 빠지지 않고 오르는 네 가지 과일이 있다. 대추, 밤, 배, 감. 이른바 ‘조율이시(棗栗梨柿)’다. 겉으로 보면 계절 과일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미처 다 헤아리지 못한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먼저 대추. 대추는 꽃이 피면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헛꽃이 없다. 그래서 사람은 자손을 남겨 가문을 잇는 존재임을 상징한다. 붉은 빛은 임금과 성현을 뜻하고, 단단한 씨는 곧은 절개와 순수한 혈통, 자손 번창의 염원을 품는다. 대추 한 알에는 가문의 미래를 향한 기원이 오롯이 담겨 있다.

 

밤 또한 의미가 깊다. 밤나무는 씨밤이 썩은 뒤에야 새싹이 움튼다. 낡은 것이 스러져야 새로운 생명이 열린다. 이는 근본과 조상과의 연결을 상징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위패를 밤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어린 밤송이는 가시 품속에서 자라다가 때가 되면 벌어진다. 

 

부모의 품 안에서 자란 자녀가 마침내 독립하는 이치를 닮았다. 한 송이에 세 톨이 들어 있는 밤은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을 상징한다 하니, 그 속에는 자손의 출세와 큰 인물을 바라는 소망도 깃들어 있다.

 

배는 황금빛 껍질을 두르고 있다. 황색은 오행의 중심색으로, 중심과 조화를 뜻하며 민족적 긍지를 상징한다. 그러나 그 속살은 희다. 맑고 흰 속은 백의민족의 순수성과 밝음을 닮았다. 여섯 개의 씨는 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 육조 판서를 상징한다고 전해진다. 겉은 단단하되 속은 맑게, 중심을 잃지 말라는 가르침이 배 한 알에 담겨 있다.

 

감나무는 더욱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감씨를 심으면 그대로 감이 열리지 않고 고욤이 난다. 좋은 감을 얻으려면 가지를 갈라 접을 붙여야 한다. 이는 사람 또한 태어났다고 저절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침과 배움을 통해 비로소 온전한 인격을 이룬다는 뜻을 전한다. 

 

접붙일 때 생가지를 칼로 째는 아픔이 따르듯, 배우는 과정에도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그 아픔을 견디며 선인의 예지를 받아들일 때, 한 사람의 인격이 완성된다. 감의 여덟 씨는 팔도 관찰사를 상징하여, 후손 가운데 큰 인물이 나오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는다.

 

이처럼 조율이시의 네 과일은 단순한 제물이 아니다. 자손 번창과 출세, 근본과 효, 배움과 인격 수양, 그리고 민족적 자긍심까지 아우르는 상징적 존재다. 한 알의 씨앗에 벼슬과 덕망을 담고, 한 톨의 열매에 효와 근본을 새겨 넣은 것이 바로 우리 조상의 지혜다.

 

차례상 앞에 서는 순간, 우리는 단지 음식을 올리는 것이 아니다. 조상의 뜻을 되새기고, 가문의 가치를 오늘의 삶에 다시 접붙이는 일이다. 전통은 형식을 따를 때가 아니라, 그 의미를 기억할 때 비로소 살아난다. 대추와 밤, 배와 감을 바라보며 그 속뜻을 헤아리는 일, 그것이야말로 명절을 명절답게 만드는 마음의 예가 아닐까.

 

차례상 위 네 알의 열매는 말없이 묻고 있다.너는 어떤 열매를 맺으며 살 것인가,그리고 무엇을 후손에게 남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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