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온 취재본부장
경기도 안산에 사는 60세 A 씨의 하루는 병원비 고지서로 시작된다.10년 전 만성 백혈병, 4년 전 뇌경색, 그리고 치매까지 겹친 노모. 병은 차례로 찾아왔고, 치료는 이어졌지만 비용은 멈추지 않았다.
대학병원에 3년 넘게 입원해 있는 동안 개인 간병비로만 1억 원 이상이 들었다. 지금도 요양병원에서 매달 130만~150만 원을 부담한다. 저축은 이미 바닥났고, 결국 아파트를 담보로 2억 원을 빌렸다.병을 치료하는 것은 의사였지만,병을 견디는 비용은 가족의 몫이었다.
대한민국은 이미 ‘간병 노인 100만 명 시대’에 들어섰다. 장기적인 돌봄이 필요한 노인이 100만 명을 넘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65세 이상 노인의 약 15%, 140만 명가량이 사실상 집 밖으로 나오기 어려운 ‘홈바운드(homebound)’ 상태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71만 명은 가족이 집에서 직접 돌보고 있다. 80세 이상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문제는 간병이 제도 밖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요양은 장기요양보험을 통해 일정 부분 국가 지원을 받는다. 그러나 치료 과정에서 필요한 ‘의료적 돌봄’, 즉 간병은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다. 법적·제도적 근거가 미비해 비용 전액을 환자와 가족이 부담한다.
2023년 기준 개인 간병비는 월평균 370만 원 수준이다. 대학병원에서 24시간 간병을 맡길 경우 월 400만~440만 원까지 치솟는다. 2022년 한 해에만 간병비 지출은 10조 원을 넘어섰다.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병보다 무서운 것이 간병비라고.
가족의 96%가 간병비 부담을 “과중하다”고 답했다. 은행 대출과 부동산 처분은 이제 특별한 선택이 아니다. 형제 간 갈등은 흔하고, 돌봄 부담이 한 사람에게 쏠리면서 가족 해체로 이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간병 파산’이라는 말이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많은 환자들이 요양병원으로 향한다. 비용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그래도 매달 130만~150만 원은 필요하다. 이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가정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인력 부족이다. 요양병원 환자는 37만 명에 이르지만 간병인은 3만여 명에 불과하다. 신규 인력 유입은 더디다. 수요는 급증하는데 공급은 따라가지 못한다. 간병비 상승은 이미 예고된 미래다.
이제 간병은 더 이상 개인의 효심이나 가족의 희생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에서 간병은 구조적 위험이자 국가적 과제다.질병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그러나 제도는 준비할 수 있다.
환자 가족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간병비의 급여화, 즉 건강보험 적용을 서둘러야 한다. 물론 재정 확충과 인력 양성 정책이 함께 가야 한다. 돌봄 인력을 사회 기반시설로 보고 체계적으로 확충하지 않는다면, 초고령 사회의 안전망은 곳곳이 뚫린 채로 남게 될 것이다.
의료가 병을 고치는 일이라면,돌봄은 병을 견디게 하는 일이다.둘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삶을 지킬 수 없다.
간병이 한 가정의 눈물겨운 사투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나누는 책임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고령사회의 문턱을 제대로 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효심이 아니라, 더 단단한 제도다.
BEST 뉴스
-
[데스크칼럼]세계를 경험하는 교육이 미래를 만든다
김지온 취재본부장 현대사회는 글로벌 시대다. 견문을 넓히고 새로운 세상과 접하기 위해서는 직접 해외에 나가 보고, 듣고, 체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내라는 ‘우물 안’에 머물러서는 넓은 세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교육 역시 교실 안에서 지식을 배우는 것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 -
[데스크칼럼]“사람은 본 만큼 생각하고, 경험한 만큼 꿈꿀 수 있다.”
김지온 취재본부장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아이들에게 흔히 던지는 질문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아직 모르겠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꿈이 없는... -
6,000원의 행복, 이 정도면 감동이다
김지온 취재본부장 사무실에서 한참 기사를 쓰고있는데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시간이 괜찮으면 함께 점심이나 먹자는 것이었다. 마침 선약이 없었던 터라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지인은 세종시 부강면에 있는 한 한식뷔페 식당의 주소를 알려주며 약속한 시간에 맞춰 오라고 했다. 취재 기사를 마무리하고 ... -
[데스크칼럼]행정수도 특별법, 이번에는 반드시 매듭지어야
김지온 취재본부장 경제수도 서울, 행정수도 세종이라는 구상이 현실화하고 있다. 정부는 13일 수도권에 있는 중앙행정기관 44곳을 2027년부터 2031년까지 단계적으로 세종시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발표가 나오자 지역 정가는 물론 시의회와 시민단체도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조상호 세종시장 역시 이... -
[데스크칼럼]의정비 인상, 시민이 납득할 근거가 먼저다
김지온 취재본부장 각 지자체의 재정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시의원들의 내년도 월정수당은 크게 오를 전망이다. 실제로 청주시의회 의원들의 내년도 월정수당은 7%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청주시의회는 당초 내년도 월정수당을 14.1% 인상해 달라고 의정비심의위원회에 요구했다. 그러나 의정비심... -
[데스크시각]상가공실 발상을 바꿔야 해결할 수 있다
김지온 취재본부장 충청권 상가 공실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자체마다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온갖 지혜를 짜내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 세종을 비롯한 충청권 상가시장에 적색불이 켜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게 문을 닫은 빈 점포가 늘면서 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