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온취재본부장
대전·충남 행정통합이 사실상 좌초됐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던 통합 논의는 멈춰 섰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해법이 아니라 책임 공방이다. 지역 정치권은 서로를 향해 날 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미래를 설계해야 할 자리에 ‘네 탓’만 무성한 현실은 시민들로 하여금 피로감과 허탈함을 안긴다.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은 이번 사태를 두고 “대전의 미래를 볼모로 잡은 무책임한 행태”라고 직격했다. 급기야 ‘매향노’와 같은 극단적 표현까지 등장하면서 갈등은 감정의 영역으로 번지고 있다. 통합이라는 중대한 과제가 진지한 토론의 장이 아니라 정쟁의 소재로 소모되는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 와중에 김태흠 충남지사는 속도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통합을 처음 제안하고 주도한 당사자로서 안타까운 심정을 밝히면서도, “통합은 자치 실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굽히지 않았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통합 법안은 재정과 권한 이양이 빠진 ‘졸속 법안’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김 지사는 현행 75대 25인 국세·지방세 비율을 60대 40으로 조정하고, 중앙정부 권한의 대폭 이양을 특별법에 명문화하자고 제안했다. 지방자치의 실질적 강화 없이 형식적 통합만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문제 제기는 충분히 경청할 가치가 있다. 통합이 단순한 행정구역 개편이 아니라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는 제도적 전환이 되려면 재정과 권한 문제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정부·여당이 이러한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만약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통합 논의는 다시 교착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고, 주민과 정부, 여야 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질 것이다. 여당이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지사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일 수는 있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특정 인물에게 돌리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사실 정부·여당이 제시한 법안 역시 지역민의 기대 수준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지역 정치권 또한 자성해야 한다. 왜 이 논의가 여기까지 오도록 신뢰를 쌓지 못했는지, 시민들을 충분히 설득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통합이라는 거대한 과제를 다루면서도 대화와 타협, 협치의 과정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성찰해야 한다.
행정통합은 어느 한쪽의 승리로 완성되는 사안이 아니다. 속도만 강조해도, 조건만 내세워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정치가 아니라, 같은 테이블에 앉아 해법을 모색하는 정치다. 생각이 다르다고 대화를 거부하고 토론을 회피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에게 돌아간다. 찬반으로 갈라진 지역사회는 상처만 남고, 미래는 또 한 번 미뤄질 뿐이다.
이제라도 정치권은 얼굴을 맞대야 한다. 통합의 필요성과 조건, 단계와 방법을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논의해야 한다. 시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우려를 경청하며, 가능한 접점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책무다.
대전과 충남의 통합은 단지 행정구역을 합치는 문제가 아니다. 지역의 생존 전략이자, 다음 세대의 기회를 설계하는 일이다. 정쟁의 언어로는 미래를 만들 수 없다. 서로를 향한 비난을 멈추고, 시민을 향한 책임으로 돌아설 때 비로소 통합 논의도 다시 숨을 쉴 수 있다.
통합의 성패는 정치의 자존심이 아니라, 지역의 내일에 달려 있다. 이제는 말이 아니라 결단과 설득, 그리고 협치로 답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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