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온 취재본부장
며칠 전이었다.취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오후 세 시쯤. 자리에 앉자마자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문장에 집중하던 그때, 아내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시간 되면 목련 좀 따러 갈래요?”
짧은 한마디였지만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목련은 때를 놓치면 끝이다. 꽃이 피기 전, 몽우리가 단단히 맺혔을 때 따야만 차로 쓸 수 있다. 그 시기를 놓치면 그해의 목련차는 물 건너간다.
나는 서둘러 기사를 마무리하고, 지난해에도 찾았던 세종시의 한 야산으로 향했다.산자락에 다다르자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대여섯 그루의 목련나무. 하지만 가까이 가보니 이미 하얗게 꽃을 터뜨린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마음이 급해졌다. ‘조금 늦었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다행히 아직 몽우리를 간직한 가지들이 남아 있었다.
아내와 나는 말없이 손을 움직였다. 꽃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정성껏 따냈다.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가지는 포기하고, 낮게 드리운 몽우리들만 골랐다.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꽃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떼어내는 손끝에 긴장이 실렸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봉지 안에 차곡차곡 쌓인 목련 몽우리들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기대 이상이었다. 하루만 늦었어도 이만큼은 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날따라 조금 일찍 사무실에 들어왔던 것이, 결국 올해의 목련차를 살린 셈이 됐다.
1년에 단 한 번뿐인 일.그래서 아내의 부탁을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목련을 따고 돌아오는 길, 묘하게 마음이 가벼웠다. 몸은 조금 고됐지만, 잘했다는 생각이 오래 남았다.하지만 목련차는 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오히려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채취한 꽃을 다듬고, 몽우리를 적당히 피운다. 따뜻한 곳에서 말리고, 마지막으로 프라이팬에 덖어야 비로소 차가 된다. 그 과정 하나하나에 사람의 손이 스며든다. 적어도 열 번 이상의 손길을 거쳐야 완성된다.
그래서일까. 이 일은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기다림과 정성이 쌓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성격이 급한 사람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목련은 봄의 아주 짧은 순간에만 허락된다. 그 덕분에 목련차는 더욱 귀하다.은은하게 퍼지는 향, 마시면 몸이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 예로부터 한방에서도 널리 쓰였다고 한다. 호흡기를 편안하게 하고, 염증을 가라앉히며,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데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요즘처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대에, 꽃차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나 역시 이제는 아내가 만든 목련차를 매일 마신다. 아침과 저녁, 보리차처럼 자연스럽게 곁에 둔다. 처음엔 밋밋하게 느껴지던 맛이 어느 순간부터 달라졌다. 입안에 머무는 향을 천천히 느끼게 되었고, 그 여운을 즐기게 되었다.
피곤한 날, 따뜻한 물에 우려 마시면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긴장이 내려앉고, 생각이 잔잔해진다.요즘 나는 잠들기 전, 목련차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정리한다. 바쁘게 흘러간 시간들을 천천히 되짚어보는 그 짧은 순간이 좋다.
꽃차 한 잔이 건네는 위로.그 작고 따뜻한 시간이 하루를 마무리해 준다.오늘도 그렇게, 조용히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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