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온 취재본부장
비가 올 듯 흐린 목요일 오후였다.청주에 사는 아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 오늘 저녁에 시간 되세요?”
“왜, 무슨 일 있니?”
“저녁이나 함께 하려고요.”
짧은 통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는 순간, 문득 내일이 어버이날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들이 부모와 함께 식사라도 하려고 시간을 낸 듯했다.
아내와 나는 아들이 예약해 둔 하복대의 한 횟집으로 향했다. 퇴근 시간이라 도로는 많이 막혔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흐뭇했다. 오랜만에 아들 얼굴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차창 밖에서 스쳐 들어오는 아카시아 향은 유난히 짙고 향기로웠다. 그 향기를 맡으니 마음까지 맑아지는 듯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식당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우리는 예약된 자리에 앉아 아들을 기다렸다.
잠시 뒤 퇴근을 마친 아들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반가운 얼굴이었다. 메뉴는 참치와 회로 정했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아들의 회사 생활 이야기부터 선거 이야기까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서로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만나기도 쉽지 않고, 함께 밥 한 끼 먹는 일조차 어려운 세월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커다란 접시에 싱싱한 회가 담겨 나왔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초고추장에 회 한 점을 찍어 입에 넣으니 쫀득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입안 가득 퍼졌다. 회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회를 맛보는 순간이었다.
맛있는 회를 먹으며 고마운 마음과 함께 괜스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부모인 내가 아들에게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나 싶은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버이날을 앞두고 아들이 정성껏 마련한 자리이니 괜한 생각은 접어두고 기분 좋게 식사를 즐기기로 했다.
회와 함께 나온 다양한 해산물들도 상을 가득 채웠다. 맛집으로 유명한 곳답게 음식 하나하나가 정갈하고 푸짐했다. 너무 좋은 음식을 먹어 배가 놀라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좋은 음식에는 소주 한잔이 빠질 수 없었다. 평소 마시던 소주였지만 이날따라 유난히 달게 느껴졌다.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으면 술맛도 달라지는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회를 마음껏 먹었더니 배가 너무 불렀다. 회를 먹고 이렇게 배부른 적은 처음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했다.
무엇보다 가장 뭉클했던 것은, 늘 철부지 같기만 하던 아들이 어느새 훌쩍 자라 부모를 챙기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니 든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월의 흐름이 새삼 느껴졌다.
부모는 자식이 어릴 때는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만을 바라며 살고, 자식이 커서는 자신의 삶을 씩씩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그런데 가끔 이렇게 자식이 내미는 따뜻한 마음 하나에 부모의 마음은 오래도록 행복해진다. 값비싼 음식 때문이 아니라 “함께 밥 먹자”는 그 한마디 속에 담긴 정성과 사랑이 가슴 깊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날 아들과 함께한 저녁 식사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따뜻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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