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온 총괄취재본부장
참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 저개발 국가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21세기, 그것도 선진국을 자처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발생했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인해 유권자가 투표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는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참정권 침해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6·3 선거는 시작부터 국민적 불신을 낳고 있으며, 그 파장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인한 후폭풍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대대적인 혁신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지난 3일 선거 이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개표소 일대에는 20~30대 청년층부터 고령층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시민들이 모여 재투표를 요구하며 참정권 침해를 규탄하고 있다. 일반적인 정치 집회와는 달리, 이들은 자발적으로 현장에 나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선관위의 해명과 대응이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가에서도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이번 사태를 헌정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주권 침해 사례라고 규정하며, 선거 관리 과정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 같았으면 책임자 몇 명이 처벌받고 사과하는 선에서 사태가 마무리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6·3 선거 논란은 단순한 사과나 문책만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들은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태가 벌어진 배경에는 선관위가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이유로 충분한 감시와 견제를 받지 못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라는 말처럼, 이번 사태는 제도적 감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을 기만하고 참정권을 훼손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부실한 선거 관리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국가 신뢰도를 떨어뜨리며 국제사회의 조롱거리로 전락할 수도 있다.
국민들은 아직도 2022년 대선 당시 발생했던 이른바 '소쿠리 투표' 사태를 기억하고 있다. 당시에도 큰 공분이 일었고 결국 선관위원장이 사퇴하는 사태까지 이어졌다. 그렇다면 그 사건을 교훈 삼아 혁신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그런데도 비슷한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국민들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선관위가 유권자 수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 투표용지를 준비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상식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송파구를 비롯해 수십 곳에서 발생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두 곳의 실수라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문제가 반복됐다면 단순한 실수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많은 국민들의 생각이다.
특히 송파구에서는 투표용지 배분 과정의 문제로 인해 한쪽에서는 부족 사태가 발생한 반면 다른 곳에는 수만 장이 남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선관위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청주의 한 투표소에서는 선거인명부 일부가 누락돼 선관위가 공식 사과하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서 낙선한 김영환 충북지사 역시 "참정권이 훼손됐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참정권 침해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문제다.
일부에서는 선관위 해체론까지 거론하고 있다. 그만큼 국민들의 분노와 실망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선관위는 올림픽공원에서 재투표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시민들의 분노를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시간이 지나면 지칠 것이다', '이번 고비만 넘기면 된다'는 식의 안일한 대응은 큰 착각이다. 특히 젊은 세대가 직접 나섰다는 것은 이번 6·3 선거를 계기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사태는 결코 유야무야 넘어가서는 안 된다. 국정조사든 특별검사 도입이든, 선거 제도 개혁이든 어떤 방식이든 철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다시는 국민의 소중한 참정권이 침해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나의 소중한 한 표가 제대로 행사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이번 사태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선거 제도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또한 공정한 선거와 국민 주권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가 다시는 훼손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BEST 뉴스
-
[데스크칼럼]세계를 경험하는 교육이 미래를 만든다
김지온 취재본부장 현대사회는 글로벌 시대다. 견문을 넓히고 새로운 세상과 접하기 위해서는 직접 해외에 나가 보고, 듣고, 체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내라는 ‘우물 안’에 머물러서는 넓은 세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교육 역시 교실 안에서 지식을 배우는 것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 -
[데스크칼럼]“사람은 본 만큼 생각하고, 경험한 만큼 꿈꿀 수 있다.”
김지온 취재본부장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아이들에게 흔히 던지는 질문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아직 모르겠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꿈이 없는... -
6,000원의 행복, 이 정도면 감동이다
김지온 취재본부장 사무실에서 한참 기사를 쓰고있는데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시간이 괜찮으면 함께 점심이나 먹자는 것이었다. 마침 선약이 없었던 터라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지인은 세종시 부강면에 있는 한 한식뷔페 식당의 주소를 알려주며 약속한 시간에 맞춰 오라고 했다. 취재 기사를 마무리하고 ... -
[데스크칼럼]행정수도 특별법, 이번에는 반드시 매듭지어야
김지온 취재본부장 경제수도 서울, 행정수도 세종이라는 구상이 현실화하고 있다. 정부는 13일 수도권에 있는 중앙행정기관 44곳을 2027년부터 2031년까지 단계적으로 세종시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발표가 나오자 지역 정가는 물론 시의회와 시민단체도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조상호 세종시장 역시 이... -
[데스크칼럼]의정비 인상, 시민이 납득할 근거가 먼저다
김지온 취재본부장 각 지자체의 재정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시의원들의 내년도 월정수당은 크게 오를 전망이다. 실제로 청주시의회 의원들의 내년도 월정수당은 7%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청주시의회는 당초 내년도 월정수당을 14.1% 인상해 달라고 의정비심의위원회에 요구했다. 그러나 의정비심... -
[데스크시각]상가공실 발상을 바꿔야 해결할 수 있다
김지온 취재본부장 충청권 상가 공실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자체마다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온갖 지혜를 짜내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 세종을 비롯한 충청권 상가시장에 적색불이 켜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게 문을 닫은 빈 점포가 늘면서 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