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온 총괄취재본부장
주말이면 외손자들이 놀러 온다. 아이들은 "할머니가 보고 싶다"며 수시로 전화를 하고, 틈만 나면 집으로 달려온다. 큰손자는 여덟 살, 작은손자는 다섯 살이다. 큰손자는 초등학생이라 제법 의젓해졌지만, 작은손자는 온몸으로 노는 아이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할머니, 책 읽어 주세요."
"블록 쌓기 해요."
"배고파요. 이것도 주세요, 저것도 주세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손자들의 요구를 할머니는 웃는 얼굴로 하나하나 다 들어준다. 남자아이들이라 그런지 여자아이들보다 훨씬 활동적이다. 밥을 먹을 때도 할머니가 옆에 있어야 하고,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여 주어야 한다.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이지만, 할머니는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웃고 놀아준다.
특히 작은손자는 마치 시한폭탄 같다. 잠깐만 눈을 돌려도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한순간도 시선을 뗄 수가 없다. 큰손자와 달리 말도 유난히 많다. 하루 종일 입이 쉴 틈이 없다.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신기할 정도다.
또래 아이들보다 말도 잘하고 어휘도 풍부하다. 가끔은 초등학생이 아니라 중학생쯤 되어야 쓸 법한 단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평소 엄마와 할머니가 책을 자주 읽어 준 덕분인지 표현력도 남다르다. 혼자 그림책을 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마치 글을 다 읽을 줄 아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을 술술 풀어낸다. 기특하면서도 참 귀엽다.
한편으로는 조금 걱정도 된다. 아이답게 서툴고 천진난만한 말투도 사랑스러운데, 너무 어른스러운 표현을 쓰는 모습을 보면 조금은 더 어린아이답게 자라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그렇게 예쁘게 놀다가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금세 장난감을 여기저기 흩어 놓고, 미니 미끄럼틀을 타며 방 안을 전쟁터로 만들어 놓는다. 그럴 때는 정말 혼이 쏙 빠질 정도로 정신이 없다. "조심해서 놀아야지." 하고 타일러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싶은 대로만 한다. 할머니가 혼을 내도 무서워하기는커녕 씨익 웃으며 애교를 부린다. 화를 내다가도 그 웃는 얼굴을 보면 어느새 함께 웃게 된다.
평소 조용하던 집안은 손자들이 오면 금세 웃음소리와 발소리로 가득 찬다. 집 안 구석구석에 생기가 돈다. 솔직히 말하면 손자들이 오면 처음 몇 분은 반갑지만, 시간이 지나면 속으로는 '이제는 좀 쉬고 싶다. 얼른 집에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만큼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돌아갈 시간이 되면 마음이 또 달라진다. 아쉽고 허전하다. 아이들은 할아버지보다 할머니를 더 잘 따른다. 아마도 할머니는 아이들의 부탁을 다 들어주고, 늘 다정하게 놀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껌딱지처럼 졸졸 따라다니다가도 잠시 할머니가 보이지 않으면 "할머니 어디 갔어요?" 하며 찾는다.
물론 이 시간도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면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때는 오라고 해도 바쁘다며 잘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할머니를 가장 좋아하고, 엄마보다 더 잘해 준다고 생각하는 시기이기에 가능한 행복일 것이다.
할머니는 손자들을 돌보느라 힘들어도 아이들의 재롱과 웃음 앞에서는 모든 피로를 잊는다.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고, 하나라도 더 챙겨 주고 싶은 마음이 바로 할머니의 사랑일 것이다.
아이들이 돌아간 뒤 집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조금 전까지 떠들썩하던 웃음소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집 안은 한적한 절간처럼 적막해진다.
"할머니, 다음 주에 또 올게요."
손을 흔들며 떠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마음 한구석이 괜스레 울적해졌다.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그 시간만큼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참 행복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했다.
"얘들아, 늘 건강하고 씩씩하게, 바르고 따뜻한 아이로 자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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