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온 총괄취재본부장
잘 아는 화백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간이 되면 점심이나 함께하자는 반가운 제안이었다. 특별한 선약이 없던 터라 흔쾌히 승낙했고, 약속 시간이 되자 조치원의 한 식당으로 향했다.
가는 길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져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식당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식당 근처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서니 화백이 먼저 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백은 이 집 청국장이 정말 맛있다며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서로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주문한 청국장이 나왔다.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고, 펄펄 끓는 뚝배기에 담겨 나온 모습을 보니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는 순간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끓여주시던 토속적인 청국장 맛이 떠올랐다. 여러 식당에서 청국장을 먹어봤지만 이 집만큼 내 입맛에 꼭 맞는 곳은 드물었던 것 같다.
반찬도 하나같이 정갈하고 토속적인 맛이었다. 호박무침, 열무김치, 가지무침, 고추무침 등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이 소박하면서도 푸짐하게 차려졌다. 물가가 크게 오른 요즘에도 반찬을 아끼지 않는 인심이 느껴졌다.
무더운 날씨 탓에 입맛이 없던 터였지만 따뜻한 청국장에 여러 반찬을 곁들여 먹으니 잃었던 입맛이 되살아나고 몸에도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조미료를 거의 쓰지 않은 듯 음식은 담백했고 간도 딱 알맞았다. 오랜만에 정말 만족스러운 점심 식사였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카페라기보다 작은 빵집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아담한 규모였지만 조용하고 아늑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었다.
우리는 아메리카노와 빵 하나를 주문했다. 화백은 이 집은 커피도 맛있지만 빵이 더욱 유명하다고 했다. 한입 베어 무니 찹쌀이 들어가서인지 쫀득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참 좋았다. 방금 식사를 마쳤는데도 자꾸 손이 갈 만큼 맛있었다.
사장은 30대 초반의 젊은이었다. 젊은 나이에 자신의 사업을 시작해 한자리에서 8년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동안 단골손님이 많이 생겨 꾸준히 장사가 잘된다고 귀띔해 주었다. 내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도 손님들의 발길은 계속 이어졌고 배달 주문 전화도 끊이지 않았다. 모두들 경기가 어렵고 장사가 안된다고 하지만 이곳만큼은 예외처럼 보였다.
잠시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성실함과 친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늘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이했고 말투도 예의 바르고 따뜻했다. 생각해 보면 음식점이나 카페는 맛도 중요하지만 손님이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음식이 맛있어도 불친절하거나 매장이 청결하지 못하면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손님을 돈벌이 대상으로만 대하는 장사는 오래가기 어렵다. 젊은 사장은 손님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과 자신만의 장사 철학을 갖고 있는 듯했다.
커피를 다 마시고 계산을 하는데 뜻밖의 일이 있었다. 사장이 웃으며 "빵값은 계산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의아해하며 "아니, 왜 빵값을 빼셨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사장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처음 오신 손님이라 저희 집 빵을 꼭 한번 맛보셨으면 해서 서비스로 드렸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다. 각박한 세상이라고들 하지만 아직도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장사가 잘되는 이유를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맛있는 음식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람의 마음이 손님을 다시 오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를 나오며 사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다음에 꼭 다시 찾아오겠다고 약속했다.
맛있는 청국장 한 그릇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젊은 사장의 따뜻한 배려로 마음까지 따뜻해진 하루였다. 사람의 진심은 크고 거창한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작은 친절과 따뜻한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낀 소중한 시간이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행복하고 흐뭇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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