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연/시인. 수필가
기분이 좋을 땐 훨씬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세상을 맑고 고운 눈으로 바라보면 아름답게 비춰지는 것이기에 사물을 욕심 없이 바라본다면 세상은 아름다운 빛깔로 젖어든다.
하늘이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맑을 때 계절이 바뀌고, 새롭게 다가올 때나 나뭇잎이 예쁘게 물들 때 그리움은 안식에서 깨어나고 우리들은 곧잘 지난날을 생각하며 그리움에 젖어 들게 된다. 그래서 어딘가 그리운 대상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침은 밝아오고 세상(世上)은 한결 의미(意味)가 있다.
인간(人間)은 누구나 가슴속에 채우지 못한 빈터가 있고, 또 채우지 못하고 이루지 못하였으므로 그리움도 있게 마련일 게다.
때로는 맑은 마음 한끝을 끌어내어 세상을 바라본다면 누군가가 찾아온 듯 때 묻지 않은 대상을 만나게 될 것이며, 그 대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그것이 곧 그리움이다.
유유히 떠도는 파아란 하늘,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그곳에 마음을 살며시 실어 보내고, 풀 내음을 맡으며 행복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도 있을 게다. 그래서 사람들은 잊을 수 없는 지난날의 그리움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쳐간다.
그리움이란 마음 안에 있는 간절(懇切)한 소망(所望)과도 같다. 그리움의 대상(對象)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리움을 많이 가지고 사는 사람일수록 그의 인품(人品)은 깊은 강물처럼 은은(隱隱)하고 맑고 향기로운 멋을 풍길 게다.
사람들은 좋지 못한 추억(追憶)을 더듬으면서 행복(幸福)해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지나온 기억 속에서 한 토막의 아름다운 사연을 잊지 못해 그리워하면서 소중(所重)하게 간직하고 가다가 꺼내 보며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움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대상을 향해 혼자만이 생각하며 은밀하게 걸어가는 길은 아닐까. 아니면 바닥까지 투명하게 비춰주는 강물일지도 모른다. 그 강물 속으로 하나의 색깔이 침투되어 간다면 은은하고 아련한 빛깔이 되어 흐르리라. 그래서 사람들은 지난 일들을 생각하고 정들었던 사람들, 잊지 못할 장소, 멀어져만 가는 아름답고 그리운 추억들을 꺼내 보며 깊은 감회에 젖어드는 것일 게다.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쳐가는 그리움이 있어 삶의 의미가 커져간다면 얼마나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사는 것일까. 세월(歲月)이 흐를수록 아름다운 기억들은 마음 안에 쌓여만 가고 가다가 꺼내 볼 땐 눈시울도 적시리라.
아련히 떠오르는 그리움은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들은 누군가가 그리워질 때 마음의 문(門)을 활짝 열어놓고 그리워해 본다. 그 그리움의 대상이 무엇이든 푸른 하늘을 여한(餘恨) 없이 바라보고 또 바라보자. 삶의 아픔을 풀어낼 수 있는 하늘 아래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며 함께 살고 있는 우리가 있음을 행복(幸福)으로 느끼면서 말이다.
멀리 계신 부모님, 사별한 남편, 외국에 간 자녀, 돌아가신 할머니와 할아버지, 소식이 없는 어릴 적 친구, 고향 산천, 아름다웠던 추억, 지난날 연인,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 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움으로 사무치게 다가온다.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이 보고 싶으나 남북 분단으로 지척에 있는 가족을 만날 수 없어 평생을 가족에 대한 그리움 속에 사는 사람도 있다.
어린 소년(少年)이 세월(歲月)이 흘러 일흔 살이 넘었지만, 어린아이처럼 돌아가신 부모(父母)님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다.
신라 눌지왕 때 충신 박제상은 일본놈에게 볼모로 잡혀간 왕자를 구출하고 자신은 체포되어 죽었다. 박제상의 아내는 치술령 고개 바위 위에서 일본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돌아오지 않는 남편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으로 망부석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혼율 세계 최고 수준인 오늘날 망부석 같은 아내가 우리 사회에 흘러넘쳤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은 필자(筆者)만의 부질없는 바람일까.
행여나 객지에 간 자식이 다니러 오지는 않을까 툇마루에 앉아 멍하니 그리움에 사무쳐 눈물을 짓고 계셨던 우리 어머니들의 숭고한 자식사랑은 그리움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필자도 여덟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 한때는 어머니가 나오는 영화만 봐도 눈물이 나왔고, 아들딸의 돌 때는 살아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그리움에 눈물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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