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연 시인.수필가
K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재혼을 하셨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했다. 계모는 밥을 제때 해주지 않았다. 계모가 해주는 밥을 먹고 학교에 가면 지각을 했다. 지각을 하면 교문에서 규율부로부터 구타를 당하고 기합을 받았다. 그래서 아침밥을 굶고 학교에 가면 아침과 점심을 모두 굶고 저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하루를 저녁 한 끼만 먹고 살려니 배가 너무 고파서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K는 등교를 포기하고 아버지 몰래 고모의 집으로 갔다. 수소문 끝에 고모 집에 아들이 있는 것을 확인한 아버지가 데리러 와서 집으로 가자고 했지만, 아침밥을 먹고 등교하자니 규율부의 구타와 기합을 감내하기 어렵고 아침밥을 굶고 등교하자니 배가 고파 살 수 없으니 안 가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K에게 방을 얻어줄 테니 자취를 하면서 학교에 다닐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K는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고, 아버지가 중학교 인근 마을에 초가지붕의 빈집을 무료로 임차하였고, 그 빈집에서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니다 하숙도 몇 개월 하였고 가정교사도 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중학교를 졸업했다.
K는 25살 때 방위병으로 공군교육사령부 내에 있는 공군 2사관학교에서 근무했는데, 근무 한 달이 지나자 쌀도 떨어지고 연탄도 떨어졌다. 그래서 90원짜리 빵 한두 봉지로 하루를 살았고 어떤 날은 세 끼를 모두 굶었다. 그렇게 몇 개월 지나다 보니 굶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는다면 미래가 없다. 살아야 미래가 있는 것이다. 사촌 여동생을 찾아갔다. 내 사정이 이러하니 5000원만 달라고 했다. 밥도 한 끼 얻어먹고 5000원을 수중에 넣으니 날아갈 것 같았다. 그 돈으로 과자를 사들고 인사처장(소령)의 집을 방문했다. 사정을 말하고 공군교육사령부 지원대대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러면 거기서 밥은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1주일도 안 돼 지원대대로 발령을 받았고 세끼를 모두 부대 내에서 해결했다. 이렇게 하여 군 복무를 마칠 수 있었다. K는 부친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지만, 김영삼 씨는 25살에 국회의원을 했는데, ‘이 정도는 내 스스로 해결해야지라고 생각했다.
K에게는 부친의 환갑이 다가오고 있었다. 돈은 없고 환갑비용 조달방법을 고민하던 중 방법을 찾았다. 공무원이던 그는 퇴직금을 담보로 공무원연금공단에서 대출을 받아 매월 조금씩 갚는 것이다.
부친과 환갑잔치를 상의했다. 부친은 돈도 없고 부조가 들어올 데도 별로 없는데 환갑잔치를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모친의 환갑잔치는 대부분 안하지만, 부친의 환갑잔치는 모두가 하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고 관행이었다. 만약 부친의 환갑잔치를 경제적 이유로 하지 않는다면 남들이 욕을 할 것이다. 그 새끼는 제 애비 환갑도 안 하는 놈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부친을 설득했다.
환갑잔치 준비에 필요한 물건은 외상으로 갔다 쓰고 난 후 부조금으로 갚아주고 모자라는 돈은 제가 대출받아 월급에서 매월 조금씩 갚겠으니 아들 나쁜 놈 만들지 말고 환갑잔치를 하자고 했더니 부친은 마침내 응낙을 하셨다. 이렇게 하여 부친의 환갑잔치를 하였는데 여러 동네의 이장들이 마을에서 방송을 했다. ○○○ 씨의 환갑잔치가 언제 어디서 있으니 참석하실 분은 참석하시라고 말이다.
그러다 보니 손님이 예상외로 많이 왔고 부조도 예상외로 많이 들어왔다. 환갑잔치 비용을 모두 계산하고도 돈이 몇백만원 남았다.
부친은 이 돈을 네가 갔다 두었다가 나 죽으면 묘소에 석물을 하라고 하셨다. 이 말을 들은 K의 계모는 네 아버지 하고 안 살 테니 데리고 가라고 했다. 그래서 부친은 당시 고등학생이던 둘째 아들을 불러 그 돈을 농 안에 갔다 넣으라고 했다.
한바탕 소동이 있기는 했지만 부친의 환갑잔치를 끝냈다. 환갑잔치를 마치고 몇 년이 지난 후 K는 장인을 통하여 들었는데 부친의 환갑 때 받은 부조금 중 남은 돈을 모두 큰아들이 가져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친척 몇 분에게 확인한 바 계모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K는 당장 계모와 따지고 싶었지만 부친의 만류로 참았다. 부친의 작고 후 계모에게 왜 그렇게 거짓말을 했느냐고 물었다. 계모의 답변은 천연덕스럽게 가져가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이제 생각도 안 난다고 한다. 발뒤꿈치도 보지 못하고 어떻게 허벅지 봤다고 하는 것인지, 죽은 후 그 죄를 어떻게 다 받으려고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참으로 궁금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K의 계모가 환갑이 되었다. 장수시대가 되고 보니 그때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환갑잔치가 없어졌고, 학창시절 단 한 번도 찾아주지 않았고 아들딸 돌 때도 찾아주지 않은 7살 연상의 계모이지만, 부친을 생각하여 계모에게 환갑기념 해외여행 비용으로 일백만원(당시 2박3일 태국, 중국 등의 여행비용이 1인당 50만원)을 주었다.
K의 부친은 건강하게 사시다가 88세에 운명하셨다. 부조금으로 부친의 장례비용을 계산하고 나니 900여만원 남았다. 900여만원을 테이블 위에 놓고 K와 K의 이복동생이 테이블 옆 의자에 앉았다.
K의 이복동생은 형님이 300만원 가져가시라고 했다. K는 네가 모두 가져가라고 했다. K의 이복동생은 남들도 형제간에 똑같이 나누어 가는데 왜 제가 모두 가져가느냐고 했다. K는 이복동생에게 다시 말했다.
내가 항렬이 형이지 나이가 형은 아니지 않느냐? 내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다. 그리하여 이복동생은 19살 연상의 이복형 K가 시키는 대로 900여만원을 모두 가져갔다. 하지만 K는 누구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事必歸正, 아마도 K 같은 사람을 위로하는 말일 것이다. 오늘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하루 종일 귓전을 맴돌고 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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