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연 시인.수필가
숲길을 걷다가 만나는 존재들의 속삭임을 들어 보면 우리가 얼마나 헛된 희망에 빠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겨우내 숲은 새 생명을 소리 없이 싹 틔우고 있다. 울창한 숲에서 나무들은 저마다 자신의 존재를 빛내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에 가장 먼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벌써 촉을 내고 솜털을 냈다.
모든 생명들은 계절을 기다리며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숭고함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본능이라고 한다. 인류 또한 시대를 거듭하면서 사회를 발전시켜왔고 좀 더 편리하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물질문명을 극대화시키는 자본 중심의 사회체제가 등장했다. 이러한 자본주의(資本主義) 체제에서 우리는 인간의 편익과 편리가 언제까지나 영원할 것으로 믿어 왔는데 참담한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자살률의 급속한 증가, 우울증, 청년실업, 그리고 먹거리의 안전성 문제, 빈부 갈등, 산업사회의 질병 등등 나열하기조차 힘들 정도이다.
사회의 모순에 대한 자각은 느림의 문화로, 느림의 문화 가운데 하나로 걷기가 등장했다. 직립보행(直立步行), 인간의 특성인 걷기를 우리는 잊어버렸다. 선인들은 산천을 유람하면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고 사람다운 삶에 대한 지혜를 얻었다. 자연 속에서의 걷기는 삶의 이치를 발견하는 지혜를 준다. 천천히 걸으면 모든 생명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 지를 느낄 수 있다.
걷는 길은 단순히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을 연결하는 연결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의 문화와 역사 등 인문학적 요소와 자원과 식생 등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결국 그 지역의 삶에 대해 동참하는 것이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만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돌아가는 자연의 순환현상(循環現象)은 정말로 자연스럽게 생멸(生滅)을 거듭한다. 모든 생명현상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삶 또한 세대를 이어가는 순환과정이다.
길을 걸으며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지금 우리는 자연과 더불어 순환질서(循環秩序) 속에서 살고 있는가. 겨우내 삭풍(朔風)이 몰아치고 매서운 한파와 눈보라 속에서도 잎눈을 틔우고 꽃봉오리를 키우는 나무와 같이 우리도 다음 세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방식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물음에 대한 대답은 시원치가 않다. 울창했던 숲이 어느새 나무가 베어지고 도로, 고사리밭, 과수원 등으로 바뀐 곳이 많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더 빨라지면서 생긴 결과(結果)는 자연재해(自然災害)라는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부메랑(boomerang)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는데도 욕망(欲望)의 질주(疾走)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유난히 맑은 날, 숲길을 걷다 보면 천하(天下)가 모두 내 것 같다. 숲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다.
걷기 운동(運動), 특(特)히 천천히 숲길을 걷는다는 것은 삶에 대(對)한 참으로 훌륭한 지혜(知慧)를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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