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온 취재본부장
얼마 전부터 필자는 재능기부로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제자는 60대 후반의 한 아주머니다.그는 초등학교조차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예전에는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고, 아주머니 역시 그런 시대를 살았다.
하지만 아주머니가 학교를 그만둔 이유는 단순히 집안 형편 때문만은 아니었다.공부가 싫었고, 그 마음은 결국 학업 중단으로 이어졌다.
아주머니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아침이면 부모님께 학교에 간다고 말한 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혼자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때로는 시골의 한적한 상여집에서 하루를 보내다가, 친구들이 수업을 마칠 즈음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는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했다”고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했다.부모님은 그 말을 믿었고, 딸이 열심히 공부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거짓말은 오래 숨길 수 없는 법이다.어느 날 부모님은 딸의 행동을 수상히 여겨 몰래 뒤를 밟았다.
아주머니는 평소처럼 상여집으로 들어갔고, 쥐죽은 듯 앉아 있는데 문이 열렸다.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부모님이었다.서로 놀라 소리를 질렀고, 그날의 장면은 아주머니의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다.
부모님은 왜 학교에 가지 않았느냐고 물었고,아주머니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다.부모님은 설득했지만, 공부에 흥미가 없던 딸의 마음은 쉽게 돌아서지 않았다.결국 그는 공부를 그만두고 이른 나이에 사회로 나왔다.
그때는 해방감을 느꼈다고 한다.공부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마냥 기뻤다.그러나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힘든 일을 전전하며 남몰래 울던 날도 많았고,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후회로 남았다.
“나중에 돈 벌고 공부하면 되지.”
그렇게 미뤄 온 시간이 어느덧 70을 바라보게 되었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그러나 최소한의 배움은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모른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불편과 서러움을 안겨준다.자주 묻는 것도 눈치가 보이고, 때로는 무시를 당하거나 이용당하기도 한다.아주머니는 그런 시간을 오랜 세월 견뎌 왔다.
그러던 그가 늦게나마 배움의 중요성을 깨닫고,부끄러움을 무릅쓰고 ㄱㄴㄷㄹ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아, 야, 어, 여…자음과 모음을 하나씩 익혀 가는 길은 쉽지 않다.오랫동안 공부와 멀어져 있었기에 이해가 더딜 때도 많다.
하지만 아주머니에게는 열정이 있다.그리고 ‘할 수 있다’는 의지가 있다.처음에는 창피해 고개를 숙이던 그가 이제는 당당히 책을 펼친다.아직 받아쓰기는 어렵지만, 받침이 복잡한 글자를 제외하면 읽는 실력은 눈에 띄게 늘었다.
나는 이 아주머니가 한글을 자유롭게 읽고 쓰며일기를 쓸 수 있을 때까지 함께할 생각이다.시간은 걸리겠지만, 서로의 호흡이 맞는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필자는 늘 말한다.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자신감이라고.자신감이 없으면 공부도, 운동도, 말하기도 제대로 할 수 없다.그래서 아주머니에게 한글뿐 아니라 스피치와 웅변도 함께 가르치고 있다.말이 정리되면 생각이 정리되고,생각이 정리되면 글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때문이다.
아주머니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고 버거울 수 있다.그러나 나는 확신한다.배움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달라진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고,더 이상 억울함과 무시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당당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1년 후,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서서 배움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 보이기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주머니의 늦은 도전과 용기에다시 한 번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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