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온 취재본부장
공공기관이 일부 악성 민원인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악성 민원은 중앙부처는 물론 각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 등 공공기관 전반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에서는 민원 응대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언과 장시간 통화 등에 대응하기 위해 민원 통화시간에 제한을 두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관마다 기준은 다르지만 대체로 10~30분 정도의 통화 제한을 두는 경우가 많다. 서울 송파구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민원인에게 통화 종료를 안내하고, 이후 자동으로 통화를 종료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같은 제도를 통해 장시간 통화가 감소하는 등 행정 효율성을 높이고 직원 보호에도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실제로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악성 민원은 폭언과 욕설, 성희롱, 스토킹, 폭행, 기물 파손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반복적인 민원이나 과도한 정보공개 청구 등으로 담당 부서의 업무가 마비되는 사례도 존재한다. 이렇다 보니 공무원에게 민원 응대는 정신적 소진을 가져오는 요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으며, 공직 기피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기도 한다.
특히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사망에 이른 사례도 있었다. 오죽하면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버려야 할 만큼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무원의 업무가 국민을 위한 봉사라고 하더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폭언과 위협, 반복적인 괴롭힘까지 감내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물론 민원인 가운데에는 법이나 규정에 어긋나는 사항을 처리해 달라고 요구하거나, 규정상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을 반복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공직자가 법과 규정을 벗어난 민원을 임의로 처리할 수는 없는 만큼,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이 느끼는 난감함과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민원은 기본적으로 법과 규정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돼야 한다. 그 범위를 넘어서는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무리한 주장이나 행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상식과 규정을 벗어난 요구를 정당화하려 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담당 공무원에게 폭언과 위협을 가하는 행위는 정당한 민원 제기의 범위를 벗어난다.
그러나 모든 장시간 민원을 악성 민원으로 볼 수는 없다. 정당한 문의라 하더라도 민원 내용이 복잡하거나 여러 부서의 확인이 필요한 경우에는 15~20분 이상 통화가 이어질 수 있다. 이처럼 통화시간만을 기준으로 민원을 일괄적으로 제한할 경우 정당한 민원까지 반복 민원이나 악성 민원으로 오인될 가능성이 있다.
자동 종료 시스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제도의 취지는 공무원을 보호하고 불필요하게 길어지는 통화를 줄이는 데 있지만, 민원인 입장에서는 통화가 자동으로 종료되는 순간 자신이 악성 민원인으로 취급받는 것은 아닌지 위축감을 느낄 수도 있다. 민원 내용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나 담당 부서의 확인이 필요한 상황에서 단순히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통화가 끊긴다면 민원인의 불편도 커질 수 있다.
결국 핵심은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해 어디까지 민원인의 접근권을 제한할 것인가에 있다.
공무원에게는 폭언과 욕설, 위협, 반복적이고 과도한 민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동시에 민원인에게도 공공기관의 문을 두드리고 자신의 정당한 요구와 불편을 호소할 권리가 있다. 문제는 과연 ‘20분’이라는 숫자 하나가 이 두 권리의 경계를 가르는 적절한 기준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해 폭언·욕설이나 위협적인 행동, 반복적이고 과도한 민원, 불필요하게 장시간 이어지는 통화에는 적절한 제동장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단순히 통화시간이 길다는 이유만으로 정당한 민원까지 차단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민원 통화시간 자체만을 일률적으로 제한하기보다는 민원의 성격과 반복성, 폭언이나 위협의 여부, 담당 부서의 추가 확인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보다 유연한 장치가 필요하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무조건 통화를 종료하는 방식보다는 필요할 경우 담당 부서의 확인이나 재상담을 안내하는 등 민원인의 권리와 공무원의 보호를 함께 고려하는 보완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민원은 국민이 행정기관에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중요한 통로다. 동시에 공무원 역시 한 사람의 근로자로서 안전하고 존중받는 환경에서 일할 권리가 있다. 어느 한쪽의 권리만 강조해서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몇 분까지 통화할 것인가’라는 숫자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민원과 악성 민원을 어떻게 구분하고, 공무원 보호와 민원인의 권리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있다. 공무원과 민원인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보다 세밀하고 유연한 민원 응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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