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온 취재본부장
주말이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집에만 있으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필자는 아내와 함께 괜찮은 명소나 둘레길이 있으면 그곳을 찾아 마음의 휴식을 취하곤 한다.
며칠 전에는 아내와 함께 충북 괴산의 산막이옛길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산세가 아름답고 주변 풍광이 빼어나 가끔씩 찾는 곳 중 하나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차를 몰아 괴산으로 향했다. 이상하게도 이날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마음이 한결 가볍고 즐거웠다. 운전하는 내내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집을 벗어나 야외로 나오면 어린아이처럼 설레고,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기분이 좋아진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과 멀리 보이는 농촌 마을은 정겨움을 더했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고향에 대한 향수까지 짙어졌다.
나이가 들수록 도시보다 시골이 더 정겹고 마음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 시절에는 도시가 그렇게 좋았다. 다시는 시골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마음먹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은 오히려 시골 풍경이 마냥 좋다. 도심의 탁한 공기와 복잡한 교통,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더 크게 느끼게 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신나게 달리다 보니 차는 어느덧 산막이옛길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등산객과 나들이객들로 주차장은 제법 북적였다. 아내와 함께 예부터 사람들이 오가던 산막이옛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나무 숲에 들어서자 상쾌한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복잡했던 머리가 맑아지고 무거웠던 몸도 한결 가벼워지는 듯했다. 역시 이곳의 공기는 어디에서도 쉽게 마실 수 없는 ‘천만 달러짜리 공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막이옛길은 자연을 최대한 살려 조성한 길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인공적인 시설물을 앞세운 관광지였다면 금세 싫증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은 예부터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이용했던 길의 흔적을 되살렸다는 점에서 다른 둘레길과는 또 다른 정취가 느껴졌다.
걷다 보니 울창한 숲 너머로 괴산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잔잔하게 펼쳐진 호수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었다. 산길을 걷다가 시야가 탁 트이는 순간마다 호수가 모습을 드러낼 때면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고인돌 쉼터와 연리지 소나무, 출렁다리, 노루샘, 망세루 등이 차례로 나타났다. 저마다 산막이옛길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특히 호랑이굴을 지날 때는 금방이라도 어딘가에서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며 나타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쉬면서 추억으로 남길 사진도 한 장 찍었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를 이어가니 이번에는 앉은뱅이약수가 나왔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조롱박에 물을 한 모금 받아 마셨다. 물맛은 깊고 시원했다. 마치 얼음물을 마시는 듯한 청량감이 온몸으로 퍼졌다.
얼음바람골을 지날 때는 이름 그대로 서늘한 바람이 온몸을 파고들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가 이곳의 이름을 이렇게 멋지게 지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오래된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니 도심에서 쌓였던 피로가 조금씩 가라앉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길 한쪽으로 끊임없이 펼쳐지는 괴산호는 걷는 내내 나에게 선물을 안겨주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호수가 나타나고, 다시 숲길로 들어서면 또 다른 모습의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같은 호수인데도 바라보는 자리마다 풍경이 달랐다.
꾀꼬리전망대에 이르자 괴산호와 주변 산세가 한눈에 들어왔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특히 요즘처럼 여름이 한창인 계절에는 짙어진 녹음이 호수와 어우러져 시원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산과 호수, 울창한 나무가 어우러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산막이옛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여름의 매력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면서 문득 가을의 산막이옛길을 떠올려봤다. 가을이 되면 산자락이 붉고 노랗게 물들고, 그 단풍이 괴산호에 비치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그런 모습을 상상하니 어느새 가을에 다시 찾아오고 싶다는 마음이 요동쳤다.
천천히 걸으며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고, 잠시 멈춰 쉬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 어쩌면 이런 소소한 시간이야말로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살아가는 진정한 행복인지도 모른다.
산막이옛길이 많은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화려한 볼거리나 거창한 시설이 아니라 옛사람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길을 걸으며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고, 그 속에서 잊고 지냈던 여유를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아내와 함께 걸었던 산막이옛길은 단순한 나들이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자연 속을 천천히 걷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바라보는 동안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쉼표를 찍을 수 있었다.
아마도 이날의 산막이옛길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그 길을 찾게 된다면, 그때는 또 어떤 풍경과 어떤 추억이 우리 부부를 기다리고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BEST 뉴스
-
[데스크시각]아이들의 꿈은 넓은 세상을 만날 때 자란다
김지온 취재본부장 아이들에게는 누구나 꿈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쉽게 답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리는 학생도 적지 않다. 이는 단순히 꿈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직 자신의 적성과 관심 분야를 충분히 발견하지 못했고, 앞으로 어... -
복숭아 향기에 취하고, 축제의 매력에 빠지다
김지온 총괄취재본부장 취재를 위해 주말 오후 세종 조치원복숭아축제장을 찾았다. 조치원복숭아축제는 세종시를 대표하는 여름 축제다. 이날은 폭염주의보가 내려질 정도로 무더운 날씨였다.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 속에 '과연 많은 사람들이 축제장을 찾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 -
[칼럼]교육은 변했지만 그리움은 남았다
김지온 총괄취재본부장 필자의 기억 속에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바로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담임을 맡았던 성○○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공부도 열정적으로 가르치셨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뛰어난 재주가 있었다. 호랑이와 ... -
[데스크칼럼] 거대한 사업보다 빛나는 괴산의 세심한 행정
김지온 총괄취재본부장 '살인더위'라는 말이 더 이상 과장이 아닌 시대다. 연일 35도를 웃도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고, 경남 양산에서는 기상관측 이래 최고 수준인 42도까지 치솟으며 기록적인 무더위를 보였다. 이제 우리나라의 여름도 아프리카나 유럽 못지않은 ... -
목소리는 최고의 명함이다
김지온 총괄취재본부장 사람마다 목소리는 모두 다르다. 듣기 좋은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왠지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도 있다. 우리는 흔히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상대를 평가하곤 한다. 좋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한 번 더 바라보게 되고, '나도 저런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으면 좋겠다'... -
"천만 달러짜리 공기”…괴산 산막이옛길에서 제대로 쉬었다
김지온 취재본부장 주말이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집에만 있으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필자는 아내와 함께 괜찮은 명소나 둘레길이 있으면 그곳을 찾아 마음의 휴식을 취하곤 한다. 며칠 전에는 아내와 함께 충북 괴산의 산막이옛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