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온 총괄취재본부장
올여름 가족들과 함께 태안 안면도로 휴가를 다녀왔다. 펜션에 여장을 풀자마자 인근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바다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고, 햇볕을 머금은 바닷물은 미끈할 만큼 따뜻했다. 날씨는 무척 더웠지만 손자들과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더위를 잊게 할 만큼 즐겁고 행복했다.
모처럼 바다를 찾은 손자들은 신이 난 듯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물놀이를 즐겼다. 간간이 밀려오는 파도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물놀이에 지치면 모래사장에 앉아 모래성을 쌓기도 하고, 땅을 파며 저마다의 놀이를 만들어 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바다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 보였다.
아이들과 한참을 함께 놀다 보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시장기가 몰려오자 휴대전화로 근처 맛집을 검색해 보았다. 대부분의 식당이 태안의 향토음식인 게국지를 대표 메뉴로 내세우며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육지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게국지는 다소 낯선 음식이었다. 호기심이 생긴 우리는 아내와 딸, 사위, 손자들과 함께 게국지 맛집으로 향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식당 안은 비교적 한산했고, 우리는 창밖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주인장이 무엇을 주문하시겠냐고 묻자 게국지와 생선구이를 부탁드렸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게국지가 어떤 음식인지 찾아보았다. 게국지는 절인 배추와 꽃게를 넣고 얼큰하게 끓여낸 찌개 또는 전골 형태의 음식으로, 충남 서해안의 태안과 서산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이라고 했다. '게국지'라는 이름도 충청도 방언에서 유래했는데, '국지'는 국이나 찌개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잠시 후 드디어 게국지가 상에 올랐다. 보기에는 꽃게탕과 비슷했지만 어딘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국물이 어느 정도 끓자 숟가락으로 한 모금 떠 입에 넣어 보았다. 첫맛부터 일반 꽃게탕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숙성된 배추에서 우러나오는 구수한 감칠맛과 꽃게의 시원하고 깊은 풍미가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조금 더 끓이니 배추에 국물이 충분히 배어들어 맛이 한층 깊어졌다. 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니 시원하면서도 진한 맛이 입안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식사를 하며 가족들에게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니 저마다 표현은 달랐지만 모두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나에게 게국지는 묵은지찌개의 깊은 맛과 꽃게탕의 시원함을 함께 담아낸 음식처럼 느껴졌다. 자극적으로 맵지 않으면서도 깊고 개운한 국물 맛이 입맛을 돋워 주었다.
뜨거운 국물이 몸속으로 스며들자 이마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하지만 육지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귀한 향토음식을 가족들과 함께 나누며 먹는다는 즐거움이 그 모든 더위를 잊게 만들었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나니 오히려 몸이 한결 가벼워지고 시원한 기분마저 들었다.
든든하게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면서도 포만감은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다음에 안면도를 찾게 된다면 꼭 다시 와서 먹어야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번 안면도 여행은 아름다운 바다와 신나게 뛰노는 손자들의 웃음, 그리고 처음 맛본 게국지까지 더해져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특별한 여름 휴가가 되었다. 무엇보다 온 가족이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가장 큰 선물이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을 마음속에 담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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