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온 취재본부장
휴가철이다. 사람들은 바다로, 계곡으로 저마다 더위를 피해 피서를 떠난다. 연일 살인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시원한 계곡과 푸른 바다는 피서객들에게 더없이 인기 있는 휴가지가 됐다.
필자도 도심의 뜨거운 열기를 피해 가족들과 함께 태안군 안면도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지난해에도 태안군의 한 조용한 해수욕장을 찾았다. 태안을 휴가지로 선택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복잡하지 않고 조용하면서도 편안하게 휴식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3년 전에는 손자들과 함께 대천해수욕장에서 휴가를 보냈다. 하지만 많은 인파에 치이고 바닷물도 기대만큼 깨끗하지 않아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태안으로 휴가지가 바뀌었다.
사실 태안은 필자에게 오래된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군 복무 시절 태안에서 훈련을 받은 적이 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풍경과 기억은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세월은 흘렀지만 태안에 대한 좋은 이미지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태안은 둘러볼 만한 곳도 많고 맛있는 음식도 많다. 필자는 여행을 가면 가능하면 그 지역의 특산물과 대표 음식을 맛보려고 한다. 지역마다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바다가 없는 곳에 살다 보니 가끔 싱싱한 회와 푸른 바다가 그리울 때가 있다. 회를 좋아하는 필자는 이번에도 안면도의 한 항구에 있는 식당을 찾았다. 오랜만에 갓 잡아 올린 활어회를 맛보니 입안부터 바다의 싱그러움이 느껴지는 듯했다.
회 한 점을 마늘과 썬 고추, 상추에 싸서 입에 넣었다. 쫀득한 식감과 부드러운 목넘김이 일품이었다. 육지의 일반 횟집에서 먹는 회와는 확실히 달랐다. 그래서인지 ‘회는 바닷가에서 먹어야 제맛’이라는 말이 결코 헛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회를 다 먹고 난 뒤 나온 매운탕 역시 별미였다. 얼큰하면서도 깊게 우러난 국물은 입맛을 한층 더 돋웠다. 싱싱한 회에 얼큰한 매운탕까지 곁들이고 나니 제대로 된 바닷가의 맛을 즐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눈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였다.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일상에서 쌓였던 피로가 조금씩 씻겨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물놀이를 즐기며 더위를 식히는 것도 바다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그래서 필자에게 바다는 단순히 물놀이를 하는 공간이 아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자연 속에서 쉬어갈 수 있는 쉼터다. 푸른 바다와 시원한 바람이 그리울 때마다 다시 바다를 찾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안면도 여행에서 바다와 음식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었다.
이번 휴가에서 필자가 머문 펜션에서는 숙박객들에게 아침 식사를 무료로 제공했다. 여러 휴가지와 펜션을 다녀봤지만 숙박객들에게 이처럼 정성스러운 아침 식사를 내놓는 곳은 쉽게 보지 못했다.
놀라웠던 것은 펜션 사장님이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로 정성껏 반찬을 만들어 식사를 차려준다는 사실이었다.
콩나물국을 비롯해 호박무침, 고추무침, 마늘종무침 등 무려 여덟 가지에 이르는 반찬이 식탁에 올랐다. 도시의 일반적인 뷔페식당에서 차려진 음식보다 오히려 더 정갈하고 맛깔스러웠다.
식사를 마무리할 때는 구수한 숭늉까지 내놓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담백하고 몸에도 좋은 음식들이다. 무엇보다 숙박객을 가족처럼 생각하며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는 주인장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음식을 먹는 내내 ‘참 고마운 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세상이 각박해지고 개인주의가 만연했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자신의 이익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고 따뜻한 정을 나누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한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한다.
이번 안면도 여행이 그랬다.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더위를 식혔고, 싱싱한 활어회와 얼큰한 매운탕으로 입도 즐거웠다. 하지만 여행이 끝난 지금까지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펜션 주인장이 정성껏 차려준 아침 밥상과 따뜻한 미소다.
이번 여름휴가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건강한 시간이었다. 가족들과 함께한 소중한 추억도 하나 더 만들었다.
특히 내 가족처럼 손님을 대하고, 자신이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로 정성껏 아침을 차려주던 펜션 주인장의 따뜻한 마음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돌아오면 풍경은 사진으로 남지만, 사람에게 받은 감동은 마음에 남는다.
이번 안면도에서 필자가 가져온 가장 소중한 기념품은 어쩌면 푸른 바다도, 싱싱한 회도 아닌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는 따뜻한 믿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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